시중은행, 급변하는 금융 패러다임 적응에 부심
모바일 중심 금융환경 확산에 경쟁자도 늘어…새 먹거리 찾으며 비용 줄이기 적극 나서
# 한 중견기업 영업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김아무개씨(32)는 처음으로 은행 대출 창구에 앉았다. 곧 있을 결혼을 위해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씨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대출 과정에 대해 잘 몰라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챙기지 않아서였다. 회사에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요청한 그는 3일이 지나서야 대출 심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예적금 실적이 없어 대출금리가 기대보다 높았다.
# 중소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는 고아무개씨(31)는 전세자금 및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거래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하지만 이자율 갱신기간이 되자 이자율이 기존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시장금리 상승 탓이었다. 대출을 갈아타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인터넷은행의 대출 금리가 낮다는 기사를 보고 인터넷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그리고 별다른 서류 준비없이 20분만에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 편의성과 효율성을 무기로한 인터넷 은행이 등장하면서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자 수익 비중이 높은 국내 시중 은행으로선 더 높은 예금 금리와 더 낮은 대출 금리를 위한 경쟁에 직면했다. 결국 시장 금리 상승으로 당장의 수익성은 양호해졌지만 장기적인 영업환경 악화 흐름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시중은행들은 수익 다변화와 몸집 줄이기라는 양 갈래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성장성이 둔화된 국내 금융시장을 넘어 해외로 진출하거나 자산운용업 등 이종 업종에 발을 걸치려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조직을 슬림화하고 인터넷은행과 같이 24시간 상담앱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변화가 서로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한 시중 은행
국내 은행들의 영업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16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국내 경제 성장 둔화와 소비심리 부진, 기업 구조조정 지속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영업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비이자 수익 성장 부진, 핀테크 기업과 경쟁, 고비용 구조 등도 국내 은행들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혔다.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은 미래 업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저금리라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당기순이익으로 5조5000억원을 낸 까닭이다. 이는 전년 대비 32.5% 증가한 수치다. 이들 시중은행은 지난 1분기에도 호실적을 내면서 불황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시장금리 상승이 예대마진 폭을 높여 순이자마진(NIM)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대됐다.
하지만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에 은행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인터넷은행이 화려하게 데뷔하면서 시중은행에 긴장감을 조성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17일 기준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지난달 5일 문을 연 이후 채 두달이 되지 않아 수신액과 여신액이 각각 3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당초 목표치인 수신 5000억원, 여신 4000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이는 기존 시중은행의 여수신액 규모에는 한참 모자르지만 올해 6월 카카오뱅크에 이어 제 3의 인터넷뱅크 출범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장기적으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소비자 요구 변화에 따라 모바일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금융업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행은 장기적으로 기존 은행에 위협적일 수 있는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아직은 인터넷은행을 둘러싼 촘촘한 금융 규제가 더 큰 변화를 막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부분이 우선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변화는 시작했지만···“엇비슷한 전략 넘어선 차별화된 전략 필요”
이러한 상황에서 시중은행들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 대다수는 금융 지주사 형태로 변신해 증권업, 보험업 등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한 다음 수익처를 다변화했다. 은행 자체로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이자수익 위주를 탈피하기 위해 신탁업을 통해 자산운용업을 영위하려하는 등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막 태동한 인터넷은행을 견제 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24시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시작했다. KEB하나은행은 365일 24시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채널 ‘모바일브랜치’를 출시했고 NH농협은행은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금융봇을 개발했다. 여기에 일부 시중은행은 2%대 특판 정기 예금을 내놓고 마이너스 대출 일부에 0% 금리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시중은행들은 부지런히 덩치를 줄이고 있다. 판관비와 같은 비용을 줄여 이익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온라인화 하고 있는 금융 시장 환경에 대비해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지난해말 기준 은행 영업점수(지점+출장소)는 총 7103곳으로 전년보다 2.4% 줄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시중 은행들이 여전히 예대마진을 통한 수익 개선에 목매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기업 대출을 줄이고 부동산 투자 수요에 맞춰 가계 대출을 늘리면서 순이익을 늘려왔다. 올해에도 예금 금리는 낮추고 대출 금리를 올려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수신금리가 높고 여신 금리가 낮은 인터넷은행 출범은 이같은 전략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와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