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볼트EV, 단단하고 탄탄한 미래차 서사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 383km…정부 보조금 및 지자체 보조금 혜택 적용 시 판매가격 2000만원대

2017-04-13     배동주 기자

아들의 서사를 담아볼까. 아들의 서사란 ‘어떻게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아버지가 될 것인가’하는 데 대한 해결 과정이다. 범위를 확대하면 어떻게 리더가 될 것인가로 이어진다. 한국GM 볼트EV는 출시와 동시에 국내 전기차 시장의 리더로 향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 역시 볼트EV 출시와 동시에 아들의 서사를 알렸다.


제임스 김 사장은 볼트EV 출시 당시 “전기차 시장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게임 체인저로 올라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383㎞에 달하는 정부 인증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지만, 올해 판매 가능한 물량이 380대에 불과해 발목을 잡았다. 선착순으로 진행했던 사전계약은 돌연 추첨제로 전환됐고, 결국 판매량 1위는 놓쳤다. 

 

한국GM 순수 전기차 볼트EV. / 사진 = 한국GM


그래서 문제는 한 차원 더 복잡하다. 리더로 올라설 방법론은 제품 성능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구체적인 방법론은 가격과 주행성능으로 요약된다. 국내에 출시된 순수 전기차를 제압함으로써 아버지(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스스로 리더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GM이 출시한 볼트EV를 만나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파주 헤이리 마을까지 왕복 44㎞를 달렸다.

편도 기준 22㎞를 20분 내로 주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기모터는 최고출력 204마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는 36.7㎏·m다. 1단짜리 변속기(전자식 정밀 기어 시프트)는 출발과 동시에 최대출력을 뿜어냈다. 낯선 가속감은 빨려드는 느낌으로 차량을 뻗어 나가게 만들었다. 엔진회전수를 높일수록 기세를 올리는 내연기관의 가속감과는 달랐다.

 

한국GM 볼트EV 충전구. / 사진 = 배동주 기자

인식하지 못한 사이 차량은 규정 속도를 넘어 달렸다. 놀라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자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듯 감속했다. L모드 덕이다. 다른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모델의 B모드와 같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회생제동시스템을 가동한다. 기어 노브를 D에 놓으면 일반 차량과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L모드에선 가속페달 하나로 가속과 감속을 제어할 수 있다.

높고 통통한 차체와는 달리 고속주행 안정성도 뛰어났다. 바닥에는 두툼한 배터리가 깔린 덕이다. LG화학이 공급한 288개의 리튬 이온 배터리 셀을 3개씩 묶어 96개의 그룹을 이룬 10개의 모듈로 구성됐다. 60kWh 규모의 리튬 이온 배터리는 무게만도 400㎏에 달한다. 하지만 배터리가 높은 차체에도 지면에 낮게 붙어 달릴 수 있게 만든다.

한국GM 볼트EV 기어노브. / 사진 = 배동주 기자

가벼운 가속감은 제동 장치의 다양한 조합으로 상쇄됐다. 운전대 왼쪽 뒤 패들시프트 자리에 있는 리젠 온 디멘드(Regen on Demand) 버튼까지 누르면 더욱 강하게 제동된다. L모드인 원-페달 주행에 페들시프트 감속 여기에 브레이크 페달까지 더한다고 생각하면 제동장치만 3가지를 넘어서는 셈이다. 이를 통해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는 덤이다.

리젠 온 디멘드를 사용할 때 보이는 실내도 충실하다. 커다란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품어 보닛을 극단적으로 줄인 결과는 넓은 실내를 창출했다. 앞바퀴 굴림 방식이지만 엔진과 변속기의 배치를 크게 고려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앞바퀴를 범퍼 쪽으로 쭉쭉 밀어냈다. 넓은 실내 공간은 여기서 비롯했다. 앞창에서 길게 뻗어 위치한 센터페시아는 차체 내부를 더욱 넓어 보이게 만든다.

시트도 두께를 줄인 얇은 시트다. 다만 넓게 보이기 위해 욱여넣은 좁은 시트가 다소 불편했다. 감싸는 느낌도 적었다. 배터리 위치에 따른 안정적인 주행감이 아니었다면 좌우로 내내 흔들릴 게 뻔했다. 단단한 골격도 시트의 아쉬움을 지우는 데 한몫했다. 볼트EV는 차체 하부에 들어가는 배터리 팩을 보호하기 위해 초고강성 강판 등 복합소재를 적용했다.

조향은 묵직했고, 서스펜션은 단단했다. 그릴과 리어램프에 쭉 뻗은 직선 사이로 올라붙은 고속 전기자동차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이 순간 볼트EV가 지닌 뚜렷한 성능은 물량 부족과 맞물려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시에 소비자도 혼란에 빠진다. 우리 사회 모든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기 전 손에 묻은 피를 씻을 수밖에 없나.

충전 효율이나 배터리 효율이 뛰어나지도 않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짧지만, 전기차 연비로 통용되는 전비는 현대차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레트릭에 훨씬 뒤진다. 실제로 22km 구간을 출발하기 전 260km에 놓여있던 주행가능 거리는 도착 이후 193㎞로 떨어졌다. 22㎞를 달렸지만 67㎞를 허비했다. 

 

한국GM 볼트EV 모터. / 사진 = 배동주 기자

그럼에도 볼트 EV는 충분히 매력적인 차다. 배터리 용량이 커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 가장 긴 전기차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비현실적인 가속감을 지닌 전기차의 매력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자동차 시장에서 결정적인 판매량을 한국GM이 보란 듯이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김 사장은 30일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에 참석해 “내년 물량을 충분히 확보해 소비자 요구에 충족하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이렇게 결론을 맺자. 볼트EV는 안정적인 주행성능으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고, 정부 보조금 및 지자체 보조금을 감안하면 2000만원대에 구매 가능한 전기차다.

한국GM 볼트EV 기본형의 보조금 혜택 전 가격은 4779만원이다.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유지 보조시스템, 저속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 시스템 등이 포함된 세이프티 패키지를 포함하면 4884만원이다.

 

한국GM 볼트EV 후면. / 사진 = 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