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 “셰일밴드 현실화 가능하다”
“올해 가장 큰 유가 변동요인은 미국”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이 마주하는 지점이 적정가격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를 따르지 않는 상품이 있다. 달러와 원유다. 달러가치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바닥을 쳤다. 미국 경제가 고꾸라진 탓이 컸다.
2008년 5월 달러인덱스(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는 70.328로 2000년 들어 최하값이다. 외환투자자들은 달러를 팔고 두 번째 기축통화인 엔화를 구매했다. 그러나 곧 달러가치는 올랐다. 어떤 물건이라도 살 수 있는 ‘기축통화’인 덕에 달러는 다시 안전자산이 됐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면 원유는 ‘기축 원자재’다. 원유는 운송수단 원료로도, 석유화학 원재료로도 쓰인다. 원유를 쓰지 않는 나라는 없다. 원유가 한 방울도 쓰이지 않는 사업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공급과 수요만으로 원유 가격이 정해지는 건 아니다. 정치, 문화, 외교, 원유 수출국 경제상황 등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은 지난해 11월 30일 원유 생산을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한달 뒤인 12월에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非)OPEC 국가들이 감산에 참여했다. 결국 지난 1월 배럴당 22달러까지 떨어진 유가는 원유 감산 기대로 55달러선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투자를 미뤄둔 정유사들이 하나둘 LNG 중심 투자계획을 밝히고 셰일오일 생산도 늘린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천연가스와 셰일오일은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라 유가 상승세를 압박한다.
그런데 이란이 최근 미사일을 발사했다. 경제 제재에서 풀린 지 얼마안돼 발생한 일이다. 이란 역시 산유국이다. 이란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경제제재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만약 이란 경제 제재가 이뤄진다면 유가는 다시 요동친단 분석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신재생에너지가 운송부문에서 원유를 추월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올해 원유 가격 형성은 어떻게 될까. 유가를 결정하는 요인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무엇일까.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에게 그 답을 들어봤다.
올해 유가전망이 제각각이다. 배럴당 55달러 박스권 유지부터 배럴당 100달러도 넘을 수 있단 예측도 나온다. 올해 유가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해 유가 평균이 배럴당 52달러선에 머문다고 예측했으나 2월 들어 54달러선으로 변경했다. 지난 1월 OPEC은 원유 감산 이행률이 82%라고 밝혔다. 전체 감산 규모 40%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목표량을 초과달성한 게 컸다. 감산 규모 10%를 차지하는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역시 70% 가량 감산했다.
하지만 원유 감산이 100%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감산 규모 중 20%를 차지하는 이라크는 일일생산량 21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지만 5만1000배럴 감산에 그쳤다. 이라크는 국제사회에 복귀하면서 정유메이저와 유전 개발 계약을 했다.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게 된다. 이라크가 감산에 소극적인 이유다.
OPEC이 추후 감산규모를 논의할 6월쯤에는 전체 목표치 중 60%를 이행할거라 본다. OPEC 감축은 처음에는 이행율이 높고 후반에는 낮은 상고하저 양상을 보였는데 이번 감산 합의도 같은 흐름으로 갈거라 보인다.
올해 하반기에는 일일생산량 20~30만배럴 초과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지난 2년 반 저유가 시절 재고비축이 이뤄져 크게 유가가 오르진 않겠다.
셰일유전이 유가 상승을 막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셰일 밴드’ 이론이 실현된다고 보고 있다. 2014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당시, 셰일오일 개발붐이 일었다. 당시 국제조사기관들은 모두 셰일오일 손익분기점이 Boe(Barrel of Equivalent・에너지 발생량을 원유1배럴로 환산한 수치)당 80달러로 예측했다. 하지만 점점 70달러, 60달러 선으로 내려가더니 작년에는 40~50달러까지 내려왔다. 기술개발 덕이 크다. 현재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유전은 수익성을 갖췄다. 유가가 오르면 셰일오일 생산이 는다. 유가 상승이 제한될거라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정유기업이 최근 투자금액을 늘리고 있다. 특히 LNG와 심해유전, 송유관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이건 어떤 의미인가
이제 석유기업이 아니라 ‘에너지기업’이라고 불러야 한다. 일종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다. 유전에는 원유와 LNG가 같이 묻혀있거나 LNG 혹은 원유만 묻혀있는 유전도 있다. 저유가가 지속되는 동안 수많은 중소정유사가 파산했다. 로얄 더치 쉘, BP(British Petroleum) 등 메이저 정유사도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번 투자는 원유 의존도를 낮춰 사업건전성을 회복하겠단 의미가 담겨있다. 한편으로는 여태껏 저유가로 미뤄둔 투자를 이번에 시작한 의미도 있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이 추진하는 송유관 건설 재추진도 투자 활성화에 한몫했다고 보인다. 물론 송유관 프로젝트는 진행추이를 봐야 알 수 있겠다.
최근 미국-이란 외교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이란에 다시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란 원유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텐데, 이란 원유 생산량이 유가에 큰 영향이 미칠까
이란이 경제제재 해제된 이후 작년 일일 원유 생산량을 100만배럴 늘렸다. 100만 배럴이면 전세계 원유 생산량 차지비중이 1% 정도된다. 1%가 수치로는 적지만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지난 2년 반 저유가 원인으로는 초과공급이 꼽힌다. 지난해 초과공급량 평균은 일일 50만배럴에 불과하다. 단순히 생각해서 이란이 생산을 늘리지 않았다면 일일 50만배럴 초과수요가 발생했을거다.
앞으로 유가를 볼 때 어느 요소를 중점적으로 봐야할까
본래 유가는 공급원인 OPEC과 주요 소비국인 선진국 경기가 좌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금융시장도 유가 결정 요소로 편입됐다. 선물시장 등 각종 금융기법이 발달해서다. 원유 대상 투기가 생기면서 원유 가격변동성도 커졌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미국이 유가시장 중심으로 부상한다. 우선 미국이 최대 소비국에서 원유 수출국으로 바뀐다. 또 보호무역주의 강세가 이어지면서 對미국 수출 대국인 중국과 인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원유 수입국인 중국・인도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유가 상승세도 꺾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저탄소 청정에너지 수요가 늘면서 원유 수요가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산업계는 유가 변동성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한국에게 유가는 완벽한 외생변수다. 원유 생산은 없는데다 원유 수요가 시장을 좌우할 만큼 크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저유가 시절 동안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기술개발을 미리 진행했어야 한다고 본다.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고 원유 외에 다른 에너지원을 찾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원유 저소비, 친환경 관련 R&D를 통해 원유에 의존하는 산업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중동이 중동 원유수입 의존도를 50% 가량으로 낮췄다. 하지만 한국 원유도입선은 중동비중이 86%다. 원유도입선 다변화 이야기는 이전부터 나온 걸로 아는데 왜 도입선 변화가 되지 않는가.
국내 정유사들도 원유도입선 다변화에 공감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채산성이 문제다. 중국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등은 모두 국영기업이다. 정부가 추진하면 따라야한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정유사더러 원유도입선 다변화를 강제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도 중동 말고 다른 지역에서 원유수입을 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설비와는 맞지 않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것도 기업에 돈을 퍼준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저항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