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유 사업 덕에 웃는 정유업계
부업서 높은 영업이익률 기록…투자 확대도 이어져
정유업계가 최근 부업인 비정유부문의 선전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변동성이 적고 부가가치가 높은 장점이 십분 발휘됐다는 평이다. 이에 정유업계도 비정유부문에 대한 투자를 점차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39조5205억원, 영업이익 3조228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매출은 18.3%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63.1%나 증가했다. 창사 이후 최대 영업이익 뿐 아니라 정유업계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3조원 돌파라는 상징성까지 얻게 됐다.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매출 16조3218억원, 영업이익 1조692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8.8%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전년의 두 배 수준(107.1% 증가)으로 증가했다. 이는 창립후 최대 실적이다.
아직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사상 최대 영업이익 달성 행진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GS칼텍스가 2조900억원, 현대오일뱅크는 9700억원 내외의 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이같은 실적 호조가 비정유 부문 확대에 따른 제품 포트폴리오의 고부가가치화에 따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유사업의 경우 시황이 좋을 때 영업이익률 5%, 나쁠 땐 적자도 자주 나는 반면 화학사업은 영업이익률 10~20%, 윤활유는 15~30%까지 수익이 나는 알짜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의 올해 석유화학 사업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까지 나오고 있다.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사업은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납사를 재가공해 파라자일렌과 방향족 석유화학제품(벤젠·톨루엔·혼합자일렌)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이 물질들은 합성섬유의 원료로 사용된다.
윤활유·윤활기유 사업의 수익성은 석유화학 사업보다 더 좋다. 정유사들은 올해 10~30%에 해당하는 분기별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원유를 정제하면서 나오는 물질 중 가장 가치가 낮은 미전환 잔사유(고도화 설비를 통해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벙커C유 찌꺼기)를 재처리해 윤활유·윤활기유를 만드는 게 윤활유 사업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한 것은 화학사업과 윤활유 사업”이라며 “화학·윤활유 사업 중심의 투자를 통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게 주효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해 92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4308억원보다 113.9% 증가한 기록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374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496억원 대비 654.9% 증가했다. 두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모두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그 밖에 윤활유 사업과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도 5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비정유 부문에서만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이후 SK인천석유화학 업그레이드, 울산 아로마틱스(UAC), 중한석화, 스페인 ILBOC 등 화학과 윤활유 사업을 위주로 4조 넘게 집중 투자해왔다. 이를 통해 PX 생산규모 세계 6위, 고급윤활기유 생산규모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최근 5년간 화학·윤활유 사업 중심의 투자를 통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것이다.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에 대해 “PX, 고품질 윤활기유(그룹III)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확대하고, 2015년부터 울산공장 시설개선 사업 등으로 생산효율과 수익성을 제고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쓰오일의 지난해 비정유부문 매출 비중은 23.6%(석유화학 15.6%, 윤활기유 8%)에 불과했으나, 영업이익 비중은 55.2%(석유화학 30.5%, 윤활기유 24.7%)에 달했다.
최근에는 고부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에틸렌 아크릴산(Ethylene Acrylic Acid, EAA) 사업을 다우케미칼로부터 3억70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에쓰오일 역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사업 비중 확대를 위해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올레핀 다운스트림 컴플렉스(ODC)와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 설비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들 설비가 가동에 들어가는 내년 4월부터는 PP(폴리프로필렌)와 PO(프로필렌옥사이드) 매출이 본격화되며 비정유 부문 비중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GS칼텍스는 바이오부탄올 사업에 진출한다. 지난해 9월 29일 전남 여수공장에 바이오부탄올 생산의 경제성을 평가하기 위한 데모플랜트 건설을 시작했다. GS칼텍스는 약 500억원을 투자해 올해 하반기까지 바이오부탄올 데모플랜트 건설을 마칠 계획이다. 바이오부탄올은 폐목재나 폐농작물을 활용해 만든 코팅제·페인트·접착제·잉크·용제 등의 원료이다. 휘발유화 섞으면 엔진 개조 없이 차량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비정유 부문 투자가 늦은 현대오일뱅크도 올해부터는 석유화학사업에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합작한 현대케미칼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때문이다. 현대케미칼은 지난 2014년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6대 4로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으로 설립 당시 국내 정유회사와 석유화학회사 간 첫 합작사업으로 관심을 모았다. 현재 초경질유(콘덴세이트)를 분해해 납사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부문의 경우, 세계 정세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하고, 때때론 적자도 발생한다”며 “비정유부문의 경우,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고 영업이익률이 높아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향후에도 비정유부문에 대한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