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현대·기아차 ‘플래그십’
아슬란·K9, 하위 모델 그랜저·K7에 치여 ‘찬밥’…스팅어 투입 시 판매간섭 심화 우려
현대·기아자동차가 딜레마에 빠졌다. 플래그십(브랜드 내 최고급 차 모델) 세단 라인업에 나란히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현대차 최중량급 차종인 아슬란 월 평균 판매량이 50대 언저리까지 폭락한 가운데, 기아차 대형 세단 K9은 한 달 200대도 팔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한 단계 아래 체급인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차 K7 판매는 고공행진하면서, 아슬란과 K9에 판매간섭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기아차가 5000만원 안팎의 고성능 차량인 스팅어를 올해 상반기 중 투입할 예정이어서, 같은 가격대의 K9 판매 부진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대형 세단의 몰락…프라이드보다도 안 팔리네
같은 기간 기아차 K9은 164대가 판매됐다. 전년 같은 기간 보다 39.3%, 전월 대비 21.5% 판매가 줄었다. K시리즈 베스트셀링 모델인 K7 판매량(3743대) 대비 5분의 1수준으로, 비주력차종인 프라이드 판매량(179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기아차 플래그십의 몰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아슬란은 2015년 대비 74% 급감한 2246대 판매됐다. 아슬란 1년 판매량이 아반떼나 쏘나타 월 평균 판매량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K9은 전년 누계대비 40.5% 감소한 2555대를 판매했다. 기아차 승용부문에서 가장 적은 판매량으로, 구형 레저차량(RV) 모델인 쏘울(2359대)이 K9 보다 적게 팔린 유일한 기아차 모델이다.
◇ 그랜저에 먹힌 아슬란…스팅어 투입, K9에 독(毒) 될까
업계에서는 아슬란과 K9 부진 핵심요인으로 ‘팀킬(Team Kill·같은 팀원을 죽인다는 게임용어)’을 꼽는다. 한 체급 아래 모델인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차 K7이 흥행하면서 판매간섭 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그랜저는 신형 모델 합류에 힘입어 1만586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110.0% 판매가 급증했다.
현대차 최신 디자인 콘셉트와 정보통신(IT) 기능이 포함된 2017 그랜저 가격은 3055만~3870만원이다. 상대적으로 구형 이미지가 짙은 아슬란 몸값이 3825만~4540만원이어서, 아슬란 구매를 고려했던 이들이 신형모델인 그랜저IG로 대거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기아차 K9 역시 지난해 기아차 대형 승용 모델 최초로 연간 판매 5만대를 넘어선 K7에 상당수 수요를 뺏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형 모델인 K9 가격은 4990만~8620만원이다. 반면 지난해 풀 체인지를 거친 K7 가격은 3010만~3975만으로 가격경쟁력이 더 높다.
현대차가 별도 고급 브랜드로 론칭한 제네시스가 EQ900과 G80 인기에 힘입어 연일 고공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현대·기아차 플래그십 판매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
‘찌르다’, ‘쏘다’라는 뜻을 가진 스팅어는 기아차 가운데서 가장 빠른 차다. 지난 1월 2017북미국제오토쇼에서 최초 공개됐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5.1초에 불과하다. 기아차는 스팅어의 디자인과 주행성능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각오다.
6일 업계 및 관계자에 따르면 기아차는 스팅어 가격을 5000만원 내외로 책정한 상태다. 이 경우 판매가격이 4990만~5330만원인 K9 3.3 GDI 모델이 판매 간섭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K9과 아슬란 모두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제네시스까지 별도로 론칭된 상황이라 K9과 아슬란이 내세울 무기가 없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기아차가 별도의 고급차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스팅어 판매에 열을 올린다면, 플래그십 라인 판매부진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