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의역 참사 이제는 막을 수 있나
무성의한 정치권·정부, 근본 조치 미뤄…내일 또 누군가 위험에 처할 수도
'이 법안은 재발의하자' 기획을 시작한지 반년이 흘렀다. 하지만 당장 내일 다시 구의역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언한대도 참사를 막을 수 없다.
본지는 지난 여름 두달 동안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 중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안을 추려냈다. 사회적 공분과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입법이 미비된 사례를 살폈다. 구의역 사고는 법안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참사다.
구의역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은 여럿이었다. 1편에서 내보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역시 1편에서 다룬 산업안전보건법은 세개가 발의됐으나 상임위 소위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10편에서 다룬 파견법은 구의역 참사 이틀후부터 7개월간 10개나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돼 있다.
“그 법안은 쟁점이 많아 뒤로 미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또는 야당이) 법안을 안 받으려고 해서 얘기를 못하겠다.” 이렇게 변명하기도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쟁점법안들이 가득하다. 법 개정으로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동명의 법안이 여러 개 발의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정부와 여야는 법안 한 개를 선택해서 가감하는 방식으로 협상한다. ‘법안을 받는다’는 건 대립하는 법안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작업을 말한다. 지난해 환노위에서 정부와 야당은 각각 자기가 발의한 법안을 선택하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언뜻 양쪽이 모두 고집을 피우다 협상이 결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불통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법 개정안의 경우, 한정애 의원과 심상정 의원은 각각 세미나를 열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부는 공청회나 세미나를 단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법안도 지난달 말에서야 뒤늦게 내놨다.
그 와중에 정부는 명령에 열을 올렸다. 고 김영한 비서관의 비망록이 보여주듯, 명령은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의 업무수첩에 적혀 하달됐다.
“혼내주세요.” 국조특위 위원인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박범계 위원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언론과 특검을 통해 다 밝혀진 것도 아니라고 발뺌하는 증인들 때문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 한 마디에 박범계 의원은 웃음을 터뜨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성한 청문회장’에서 웃음을 터뜨린 박범계 의원을 용서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안듣고 명령하는 정부와, 이를 비호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 의원 말처럼 혼이 나봐야 한다. 대통령이 자숙하는 동안 정부는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