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1조원 과징금...다른 데로 불똥 튀나
퀄컴 “라이선스 관행이다” 주장, 공정위 기술남용 방지 의지 재표명
지난해 12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1조 300억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표준특허기술이나 독점 특허,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들의 갑질에 대한 조사 및 처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전문가는 “공정위 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퀄컴이 표준기술에 대한 차별금지 원칙을 어긴 게 맞다”면서도 “퀄컴측 반론을 보면 자신들의 행위가 업계 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면 법원이나 WTO에서 퀄컴이 ‘우리만 부당하게 과징금을 낸다’고 말할 근거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상으로 미국 기업은 한국에서 부당하게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과 통상마찰이 발생하거나 퀄컴이 이 문제를 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퀄컴은 공정위 발표 직후에도 고등법원에 항소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퀄컴 과징금 뿐 아니라 표준기술 남용 행위 단속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우선 공정위는 28일 한미FTA에 의거 퀄컴에 반론기회를 주는 등 차별금지 조항을 어기지 않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취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2015년 11월 심사보고서 송부 후 6개월 이상 의견제출 기한을 보장하고 올해 5월 퀄컴의 의견서가 접수된 이후 7월부터 5개월여 동안 총 7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전례가 없을 정도로 퀄컴의 방어권을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조는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4일 배포된 ‘2017년 업무계획’에 따르면 공정위는 “반도체, 방송통신 등 표준기술이 확산된 시장의 경우 기술 선도자에 의해 독과점이 형성되기 쉽고 그로 인한 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기술 선도자의 경쟁사업자 배제, 연구개발(R&D) 혁신경쟁 저해행위 등 표준 기술 선점을 통한 대표적인 남용행위를 중점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ICT 핵심 기술이나 플랫폼을 보유한 외국계 기업들이 최근 정책 기조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표준화기구 확약(FRAND)에 따라 표준특허(SEP) 보유자는 시장 행위자에게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한다. 퀄컴은 2세대 통신기술 특허(CDMA)부터 3세대, 4세대 통신 표준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2016년 업무계획 발표 당시에도 “지식재산권 남용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감시 대상에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불법행위도 포함됐다.
퀄컴이 자사 행위를 업계 관행이라고 설명한 만큼 항소 과정에서 다른 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공론화될 가능성도 있다. 퀄컴 과징금 사태 이후 업계 관계자들은 언급하길 꺼려하지만 인텔 같은 시장 선도 칩셋 업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PC와 모바일 분야에서 점유율이 높은 운영체제를 보유한 기업들의 ‘갑질’도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내에 유한회사를 둔 세계적 기업에 대해 감사의무를 부과하겠다는 논의가 진행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법원이 퀄컴과의 재판에서 공정위 편에 설지는 미지수다. 이번 판결이 시장에 미칠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법원은 지재권(지적재산권) 침해 행위나 프렌드 조항 자체보다 판결이 시장에 미칠 파장이나 상황적인 정당성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어느 편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지 지금 상황에선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