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폐인 교수, 최순실 게이트로 몰락

게임 전도사 류철균 교수, 정유라 학점 특혜 혐의로 구속

2017-01-04     원태영 기자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씨(61)의 딸 정유라씨(21)에게 성적과 학사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이화여대 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51·필명 이인화)가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 사진=뉴스1
게임업계엔 대표할만한 교수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게임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가 드물기 때문이다.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는 일명 ‘게임폐인’ 교수로 불리며, 게임의 유용함을 세상에 널리 알려왔던 인물이다. 그는 불합리한 현실보다는 들인 시간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는 게임 세상을 예찬해 왔다. 현실의 불합리함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던 것일까. 류 교수는 최근 정유라의 불법 학점취득을 도운 혐의로 구속됐다.

류 교수는 박사 학위도 받기 전인 29세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에 영입됐다. 류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인화라는 필명을 사용해 1993년 소설 ‘영원한 제국’을 출간했다. 정조의 독살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소설은 100만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류 교수는 2000년대부터 “문학의 미래는 게임에 있다”며 디지털 게임에 몰두해왔다. 2003년 디지털 스토리텔링 학회를 창립하고, 2005년부터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구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과장까지 지냈다. 최근엔 모바일 게임 및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도구를 개발하고, 인공지능 스토리 자동생성 프로그램 등을 연구했다.

류 교수의 게임 사랑은 남달랐다. 불혹의 나이에 온라인게임 리니지2에 빠져,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평소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게임 사랑을 강조하며, 게임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게임업계에서도 류 교수는 유명 인물이었다. 200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은 ‘어린 애들이나 하는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명 지식인이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였다. 류 교수는 여러 게임관련 세미나에 초대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갔다.

류 교수는 지난 2005년 ‘한국형 디지털스토리텔링’이란 책도 출간했다. 2004년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전쟁’을 모티브로 디지털스토리텔링에 대해 풀이한 책이다. 바츠해방전쟁은 2004년부터 약 4년간 20만명 이상의 유저가 참여한 온라인게임 내 전쟁이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사회성·정치성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엔씨소프트 문화재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게임사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당시 발표회에서 “게임은 한류 수출 콘텐츠의 핵심이고, 현재 게이머의 수가 20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사회가 공인하는 언어의 지위를 아직 갖지 못했다”며 게임사전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류 교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 나갔다. 지난해 11월에는 스토리헬퍼 후속인 스토리타블로를 업계에 선보였다. 스토리헬퍼는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대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3년간 공동으로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3년 7월 첫 선을 보였으며, 스토리텔링 지원 도구로서는 국내 최초로 개발됐다. 영화·소설·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 등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 도출과 스토리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한다.

당시 류 교수는 스토리헬퍼 제작 배경으로 “국내 스토리텔링 저작도구는 스토리헬퍼가 유일했다”며 “이미지 저작 기술, 사용자 협업형 콘텐츠 저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저작도구는 개발이 미비했다”고 밝혔다.

평소 들인 시간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임세상을 예찬해 왔던 류 교수가 최순실 게이트에 얽혀 긴급체포됐다. 최순실씨 딸인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다. 류 교수는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청년희망재단 이사로 재직하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후 이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류 교수는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학점 특혜가 들통날까 봐 뒤늦게 조교를 동원해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 교수는 조교들이 지시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논문 심사권한을 내세워 답안지 대리작성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 논문 심사나 학계 활동 등에서 불이익을 줄 수도 있음을 거론하며 특검 조사를 앞두고 조교들의 입막음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황이 알려지자, 게임업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류 교수는 평소 공정한 기회를 강조해 왔다. 스토리헬퍼 역시 국내 콘텐츠 역량 강화를 위해 무료로 제공한 프로그램이다. 그랬던 그가 비선실세와 협력하고, 특혜가 드러나자 상대적 약자인 조교들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다.

류 교수가 구속되면서, 개정·증보판을 예고한 게임사전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류 교수는 특검이 파악한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에는 이름을 날린 학자가 많지 않다. 그나마 류철균 교수가 게임 전도사로서 게임의 유용함에 대해 설파해왔다”며 “이번 류 교수 구속으로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다시금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