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박스, CJ 밀어내고 배급 시장 1위 승승장구
지난해 이어 연타석 홈런…수직계열화 비켜선 채 콘텐츠 전략 집중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CJ E&M을 투자·배급 시장 1위 자리에서 밀어냈다. 영화 배급편수가 CJ E&M의 절반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쇼박스의 선전이 돋보인다. 지난해에도 쇼박스는 암살과 내부자들, 사도를 모두 흥행시키며 영화판에 뒤흔들었다.
CJ나 롯데는 투자·배급·상영관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사가 투자·배급한 영화를 자사 상영관에 밀어주기한다는 비난받기 일쑤다. 자사 영화 밀어주기를 제한하는 법안도 발의되기도 했다. 반면 쇼박스는 2007년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를 팔았다. 수직계열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셈이다. 이에 쇼박스는 콘텐츠 투자에 집중한다. 여러 호재가 겹친 내년에 쇼박스는 비상할 가능성이 높다.
◇ CJ E&M 역대 최악부진…쇼박스는 묵묵히 제 갈길 간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의 결산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한국영화 배급사별 관객점유율 1위는 쇼박스다. 그 뒤를 CJ E&M과 NEW,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3강이 나란히 차지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부동의 1위가 CJ E&M이었다. 쇼박스 1위 등극은 파란에 가깝다.
다만 12월 박스오피스 결산자료까지 합치면 순위가 바뀐다. 쇼박스는 12월 영화를 내놓지 않았다. 반면 CJ E&M은 형과 마스터를 연이어 내놓아 벌써 관객 600만명 이상을 추가했다. 11월까지 쇼박스와 CJ E&M의 총 관객수 차이는 370만명 안팎이었다.
영화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쇼박스가 사실상 1위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 편수 차이 때문이다. 쇼박스는 올해 단 9편의 영화로 관객점유율 28.3%를 차지했다. CJ E&M은 12월까지 17편를 내놔 쇼박스와 비슷한 성적표를 받았다. CJ E&M으로서는 여름 성수기 부진이 타격이 컸다.
문지현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CJ E&M 영화 부문은 3분기 70억원 가량 적자를 기록했다. 3분기 영화 성수기에 적자를 내기는 처음이다. 올해 연간으로도 사상 최대 적자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양사의 영화 1편 당 평균 관객수는 324만명(쇼박스)과 186만명(CJ E&M)으로 차이가 크다. 쇼박스가 투자에 비해 훨씬 큰 수익을 거둬들였다. 쇼박스는 지난해에도 한국영화 흥행상위 10위에 무려 4편이나 올렸다. 올해도 500만명 이상 관객동원 영화를 3편이나 배출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투자수익률 저조로 고민이 많다. 지난해 한국영화투자수익률은 –7.2%에 불과했다. 2011년 이래 가장 저조했다. 이에 쇼박스의 선전이 특히 돋보인다.
한국 영화 관객은 4년 연속으로 2억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해 200만명에 가깝던 영화 1편당 평균 관객수는 올해 150만명 안팎까지 떨어졌다.
문지현 연구원은 “올해 국내 영화 개봉 편수가 지난해보다 31% 증가했지만 관객은 늘지 않았다”며 “게다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한국 영화를 투자·배급하고 있어 국내 투자·배급업계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극장 없어도 강하다…콘텐츠 기획‧개발의 승리
쇼박스의 연이은 성공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산업계에 시사점을 준다. 쇼박스는 CJ나 롯데와 달리 멀티플렉스를 보유하지 않았다. 심지어 4강의 한 축인 NEW도 올해 4월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동에 있는 CGV 신도림 위탁점 10개관을 양수하며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박스 모기업 오리온은 2007년 메가박스를 1455억원을 받고 맥쿼리에 넘겼다. 메가박스는 지난해 다시 2600억원에 제이콘텐트리로 인수됐다. 메가박스가 국내 멀티플렉스 3위를 유지하고 있어 뼈아플 만하다. 하지만 쇼박스 생각은 다르다.
유정훈 쇼박스 대표는 2012년 영화전문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극장이 있었다면 계속 안일했을 것 같다. 프로덕션을 70% 정도만 만들어도 우리에겐 극장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극장이 없어지면서 콘텐츠 질적 향상에 집중하게 됐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쇼박스는 콘텐츠 기획능력에서 4강 중 가장 앞섰다고 평가 받는다. NH투자증권은 쇼박스를 엔터테인먼트 투자유망종목으로 꼽으며 “영화 기획‧개발 능력을 증명했다. 감독시스템과 자체 기획‧개발 팀을 통해 높은 흥행비율(hit rate)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천콘텐츠인 IP(지적재산권)에 대한 투자가 대표 사례다. 웹툰을 선제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단연 화제를 끄는 대목이다. 이달 14일 쇼박스는 웹툰 전문 제작사 스토리컴퍼니와 웹툰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웹툰 공모전 주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쇼박스는 앞서 지난 10월 스토리컴퍼니와 웹툰 공동기획 및 제작에 대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2년간 총 10편의 작품에 투자해 개발에 참여하고 투자 수익을 공유하는 한편, 쇼박스가 해당 웹툰의 영화화 개발에 대한 독점적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유정훈 대표는 웹툰 공모전에 대해서도 “그동안 은밀하게 위대하게, 내부자들 등 인기 웹툰 원작 영화의 투자 배급을 통해 원천 콘텐츠로서 웹툰의 가능성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전략의 힘이 유 대표에게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유 대표는 2008년부터 쇼박스 대표이사를 맡아 10년 가까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유 대표가 취임 직후 가장 먼저 내세운 전략이 콘텐츠 개발이다.
2008년 쇼박스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SBS와 손잡고 멀티문학상을 제정했다. 당시 멀티문학상의 목표가 양질의 원천 콘텐츠를 발굴해 영화 및 드라마, 출판 등 다양한 장르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생산이었다. 이 전략은 8년이 지난 현재 웹툰으로 옷만 갈아입고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유 대표는 본래 광고쟁이다. LG애드(현 HS애드)에서 15년 이상 일한 베테랑 광고인이다. 영화계엔 마흔 넘어 발을 들였다. 규모보다 콘텐츠 기획이 중요한 광고업 경험이 영화계에서 빛을 발한 모양새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대중문화평론가)는 “쇼박스가 IP를 보유하고 있다면 다른 플랫폼에 영상화할 권리도 판매가 가능하다. 웹툰은 번역 등 여러 제약이 있어서 직접 수출할 때 팬덤 확보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걸 영화로 만들어놓으면 판권 판매 뿐 아니라 관객 확장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다”며 “쇼박스의 IP 투자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형석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도 쇼박스를 두고 “감독 채널 시스템을 보유한 IP 회사”라고 말했다.
◇ 수직계열화 논란에도 자유로워
유정훈 대표는 따로 언급한 적이 없지만 극장이 없어서 좋은 또 하나의 요소는 이른바 수직계열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데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발 경제민주화가 영화산업으로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앞으로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영화산업의 주요 영업모델인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 중 사실상 쇼박스가 하지 않는 건 상영뿐이다. 하지만 국내서 투자배급과 상영 겸업이 수직계열화의 논란의 핵심이 되다보니 쇼박스는 이 비판여론으로부터 한발 비켜선 모양새가 됐다.
일례가 검사외전 스캔들이다. 검사외전은 올해 2월 9일에 스크린을 1812개나 차지했다. 이날 하루 전국 상영횟수만 9451회다.
스크린 독점 논란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검사외전은 본래 쇼박스의 투자배급 영화다. 그런데 스크린 독점에 따른 비난은 CJ CGV 등 멀티플렉스 업체가 오롯이 떠안았다. 막상 검사외전은 CJ와 상관없는 영화지만 CJ와 롯데 등 투자배급과 멀티플렉스를 모두 겸업하는 업체들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기 때문이다.
한 영화제작자 출신 연구자는 “쇼박스는 (극장을 매각한 탓에) 배급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면이 없지 않다. 검사외전의 경우 돈을 많이 들인 대작도 아니고 작품의 질도 좋지 않은데 스크린을 굉장히 많이 잡았다. 이건 경쟁작들이 없어서 극장이 검사외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결국 쇼박스는 의도치 않은 스크린 독점으로 1000만 관객 가까운 성적을 내고 비판여론은 다 피해갔다.
이 때문인지 시민단체 고발에도 쇼박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최근 영화산업을 ‘동물원’이라 칭하며 날을 세우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역시 CJ와 롯데만 정면겨냥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손에 든 칼날도 주로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를 향하고 있다. 이래저래 쇼박스로서는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내외 환경이 조성된 모양새다.
◇ 2017년 전망은 더 좋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쇼박스의 내년을 더 기대할만 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쇼박스가 중국 화이브라더스와 합작한 영화 뷰티풀 액시던트(Beautiful Accident)를 새해 2월 이전에 개봉한다. 송강호 주연 택시운전사도 상반기에 개봉한다.
모기업발 그룹 재편도 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2일 오리온그룹은 이사회를 열고 ㈜오리온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보통주식 1주를 10주로 액면분할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쇼박스는 비제과사인 오리온 홀딩스에 편입된다.
서형석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리온의 지주사 전환 결정은 장기 투자 및 재무전략 기반 확립이 결정요인”이라며 “쇼박스로서는 다양한 전략적 투자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