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증가세 확대…문제는 변동금리
한국은행 금융 안정 보고서 발간…기업 대출은 줄어
한국 경제가 부채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민간 신용 시장에서 가계부채는 줄어들 낌새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경기회복 지연, 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취약가계를 중심으로 채무상환 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업 재무 건전성은 저금리와 구조조정 노력 등으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업황 부진 장기화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27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신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말 194.4%에서 올해 3분기말 197.8%로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고치다. 민간신용은 가계와 기업의 빚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국내총생산과 비교해 민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민간 신용 위험도도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민간 신용 위험도는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과 장기 추세치의 ‘신용 갭’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다. 올해 2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신용 갭이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다. 예상치보다 민간신용 증가율이 더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3분기들어 민간신용 대비 명목GDP가 장기 추세치보다 0.3%포인트 앞서면서 민간 신용 증가 수준이 확대됐다.
세부적으로 가계부채 신용갭은 대폭 늘어난 반면 기업부태 신용갭은 줄어드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띄었다. 우선 가계신용 명목GDP 대비 갭은 지난해 2분기 이후 플러스(+)를 지속했다. 하지만 명목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이번 분기 들어 장기추세보다 2.8%포인트 확대되면서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신용갭이 2%에 접어들면 신용 위험을 ‘주의’ 단계로 평가한다.
실제 가계신용은 큰 폭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3분기말 기준 가계부채(가계신용통계 기준)는 1295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2% 증가했다. 10월에만 가계부채가 7조원 가량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신용 잔액은 이미 13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51.1%로 지난해말보다 7.4%포인트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3분기말 기준 은행권 가계 부채의 71.6%가 변동금리 대출이라는 점이다. 특히 가계 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인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비중은 62.4%에 이른다. 나아가 한국은행은 비은행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은 일반 은행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기준 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 시중 금리가 오르게 되면 채무자 이자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KDI에 따르면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 소득이 5% 하락하고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는 충격이 발생하는 경우, 가계 평균 원리금 상환액은 1140만원에서 14%증가한 1300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기업 대출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다. 3분기 장기 추세치 대비 기업신용 갭은 -2.5%포인트로 2013년 4분기 이후 지속된 마이너스 폭이 확대됐다. 특히 예금은행 기업대출은 3분기말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증가에 그치면서 4분기 연속 증가폭이 축소됐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순상환 기조가 지속했다.
기업 신용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활동이 위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영업활동이 활발해지면 대출이 증가한다. 올해 기업 신용이 줄어든 것은 업황부진 지속, 구조조정 추진에 따른 신용 경계감 등에 따라 기업 경영이 보수적으로 변한 탓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 신용증가세 둔화 등으로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이자보상배율이 상승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가계에서도 금융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예년 평균을 유지하는 등 채무 상환능력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며 “다만 대내외 여건이 여전히 불확실성에 놓여있고 기업의 업황부진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또 시장금리 상승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