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차로변경의 나라’에서 먼 얘기
올해 차로변경 터널사고만 145건…"교통환경 정비돼야 자율주행 상용화 가능해"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임시운행이 허가된 자율주행자동차 11대가 지난달까지 2만600㎞를 무사고로 달렸다고 26일 밝혔다. 국토부가 2020년을 자율주행차 상용화 원년으로 못 박은 상황에서, 자율주행기술 완성도가 상당한 괘도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내 도로교통 상황은 무시한 채 자율주행차에 대한 환상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차로 급변경이 자주 발생하는 국내 도로 상황에서, 컴퓨터에 의존한 자율주행은 사실상 ‘꿈같은’ 얘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6일 국토부에 따르면 첫 자율차 임시운행 허가가 발급된 3월 4일부터 11월까지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서울대, 한양대, 교통안전공단 등 6개 기관이 임시운행을 허가받은 자율차 11대가 자율주행상태로 2만6000㎞를 달렸으며 주행 도중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이날 자율차 주행실적과 함께 국민 700명과 자율차 전문가 3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자율차 윤리 및 수용성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자율차에 탑승해본 전문가의 94%가 '3단계 자율차'가 상용화했을 때 이용하겠다고 답해 자율차를 타보지 못한 전문가(54%)와 일반 국민(54%)보다 자율차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3단계 자율차는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등 제한된 조건에서는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지만, 돌발상황 등이 발생했을 때는 운전자의 대응이 요구되는 수준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이뤄지는 4단계 자율차로 질문대상을 바꿨을 때도 자율차를 이용해본 전문가의 82%가 상용화되면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미탑승 전문가는 30%, 일반 국민은 52%가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즉, 정부와 자율주행 시범운행을 진행한 전문가가 내린 자율차에 대한 평가는 준수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밝힌 무사고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율 주행 시범기간 동안 탑승자가 자율주행 중인 차량을 수동으로 전환해 직접 운전한 사례가 10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동운전 전환 상황은 안전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는데 자율차 앞으로 차량이 끼어든 경우, 도로공사로 차로가 지워진 구간에 진입한 경우 등이었다.
즉, 운전자가 핸들을 잡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자율주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상 자율주행 기능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급차로 변경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교 유형이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차로 변경 등으로 올해 전국에서만 145건의 터널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율주행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토부가 2020년을 자율주행차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정작 자율주행을 방해하는 교통환경 정비 및 도로교통법 개정 등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종선 변호사는 “자율주행과 사람이 없어도 되는 무인차라는 개념은 다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교통환경과 미국이나 여타 다른 선진국의 교통환경은 차이가 있다”며 “전문가가 세심하게 주변 상황을 살피는 시범운행결과만으로 자율주행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결과를 발표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요한 것은 자율주행을 믿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수준은 그 뒤의 문제”라며 “정부가 2020년을 자율주행 상용화시대라고 밝혔지만, 우리나라 교통상황과 법이 바뀌자 않는 이상 그 어떤 좋은 차가 드러와도 사고는 필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자율차 교통체계를 논의하는 세미나를 다음 달 개최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자율차 주행자료 공유센터를 구축하고 자율차의 사회적 수용성에 관한 연구도 진행해 자율차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