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행동대장' 의혹 국세청은 왜 느긋할까
최씨와 관계 불편 기업들 세무조사 시달려…비밀유지규정 탓 인과관계 밝혀내기 힘들어
2016-11-29 유재철 기자
최순실 씨와 갈등을 빚은 차병원그룹은 2014년 11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2013년 4월 전국승마대회에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밀려 2위를 차지한 김 모 선수의 아버지가 해당 경기 심판들의 부정심사 의혹을 제기하자 김 선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컨설팅 업체는 한 달 뒤 세무조사에 시달렸다. 또한 차은택 씨의 측근인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지난해 6월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를 인수한 A사 대표에게 지분 80%를 넘기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최순실 사단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 씨 등이 소위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들에게 본떼를 보여주기 위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협박·보복용 무기로 사용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쯤되면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어야 할 국세청이지만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검찰이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분위기가 어수선한 기재부와 상반된 모습이다.
국세청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최 씨가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무조사를 보복용 카드로 언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역할을 보면 그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민정수석실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등 이른바 5대 사정기관의 활동방향을 설정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검경의 수사,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 민감한 정보도 수집한다. 이 중 국세청에 대해선 고위인사의 비자금과 탈세 등을 조사하도록 하명을 내리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세무조사는 보통 비정기(특별)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맡는다.
만약 최 씨가 실제 민정수석실의 권력을 이용해 국세청을 움직였다 하더라도 현재로선 그 실체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다. 뜬금없이 세무조사를 받은 해당업체들이 어떤 이유로 조사를 받았는지에 대해 국세청이 스스로 ‘세무조사대상 선정이유’를 밝히면 되지만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현행 제도상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4국의 세무조사 진행은 ‘납세자 과세정보’를 이유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조사4국 직원들은 옆 팀하고는 대화도 제대로 안 나눌 정도로 (비밀유지에) 민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옆 팀에서 어느 기업 세무조사를 진행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기세무조사는 통상 4~5년을 주기로 진행되지만 비정기세무조사는 말 그대로 언제 진행될지 예측이 안 되며, 반대로 국세청인 입장에선 언제 진행해도 가능한 세무조사다. 비밀유지규정때문에 국세청으로선 ‘혐의가 있어 진행했다’는 입장으로도 충분한 해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세청은 최 씨와 관련된 업체들의 세무조사에 행동대장을 했다는 의혹에도 느긋할 수 있다.
국세청은 관계자는 “최순실 씨가 기업들에게 보복용으로 세무조사를 거론했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와 관련해 확인된 것은 없다”면서 “현재 최 씨와 관련된 (탈세) 의혹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협의점이 있으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