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의 한 해법

‘달라스 스타일’ 뛰어 넘는 ‘재벌 스타일’…국민연금 바로 세워 황제경영 견제해야

2016-11-24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SG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요소뿐아니라 환경(E)·사회(S)·지배구조(G)등 비재무적 변수도 동시에 고려하는 경제를 뜻합니다.<편집자주>

 

‘달라스 스타일’이란 주로 가족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불화, 부패와 사치, 추문 등을 말한다. 미국의 통속 드라마 ‘달라스’에서 나온 말이다. 이 드라마보다 더 통속적이고 더 막장같은 스토리가 최근 몇 년 한국 재벌기업들에서 펼쳐졌다.

 

2년전 현대차 그룹은 이상한 결정을 했었다. 바로 10조5천억을 들여 한전부지를 매입한 사건이다. 감정가보다 7조원 이상 더 써낸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회장의 밀어붙이기 식 결정에 대해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데 있다. 

 

재작년 말에는 대한항공의 장녀가 일을 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다. 서구언론들은 이 뉴스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다뤘다. 그들 사회에서 수백년 전 사라졌던 봉건 영주를 21세기 한국에서 봤기 때문이다. 

 

작년 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씨 남매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 강화를 위해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한국 자본시장에 오점을 찍은 사건으로 본다. 

 

올해 들어서는 롯데그룹 관련 뉴스가 뜨거웠다. 경영권을 둘러싼 두 형제간의 이전투구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었다. 한국에서 소설이 안 팔리는 이유는 이런 재미있는 사건들이 매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재벌을, 그것도 한국경제의 핵심 주체인 그들을 희화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서구언론이나 국외자들은 그러할지라도 우리들은 그럴 수 없다. 지난 50여년간 그들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을 생각하고, 현재 그들이 부담하고 있는 경제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고려해서도 그렇다. 어찌 하면 좋을까.

 

재벌은 태동부터 정치권력과 손잡으며 출발했다. 그 당시 정치권력은 임기가 없는 장기권력이었고 독재권력이었다. 그러한 강력한 권력 밑에서 재벌들은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공과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적 자원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재벌의 배후에는 그들에게 생사여탈권도 행사할 수 있었던 장기 독재 정치권력이 있었다. 이른바 정치권력으로부터 견제와 균형이 작동했었다. 

 

그러나 이제 정치권력은 민주화된 5년 임시권력, 사실상은 3년짜리 권력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재벌권력은 임기가 없는, 3세 4세까지 대물림하는 영구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의 역학구도가 뒤바뀐 셈이다. 그들이 3년만 버티면 그들을 제어할 정치권력은 소멸한다는 뜻이다. 또한 지난 반세기 재벌들은 경제력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정치, 관료, 언론, 사법부까지 사실상 손에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딜 가나 그들의 장학생들이 포진해 있는 까닭이다.

 

필자는 여기서 국민연금 기금을 떠올린다. 국민연금 540조원의 기금은 바로 국민들의 돈이다. 2013년 추계 상 국민연금은 2043년 2500조원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이 돈 중 약 100조원이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되어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 수만 290개나 된다.​ 국민연금은 웬만한 재벌 주요기업들의 대주주로 등극해 있다. 이 규모는 전체 운용규모의 증가에 따라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국민들의 돈인 이 국민연금을 활용해서 견제 받지 않는 한국 재벌 기업들의 추문과 부패와 온갖 통속적 행태들을 바로 잡고, 그들이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으로 발전하고 동시에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스텝이 바로 연금 기금의 독립이다. 한국은행 수준의 위상을 갖고 한시적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래야 관치금융과 연금사회주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둘째, 여기에 고도의 전문성을 얹어야 한다. 기금 운용의 성과는 전문성 있는 인력에 좌우된다. 글로벌 인재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로 이 기금으로 하여금 책임투자 원칙을 제대로 실행토록 해야 한다. 무늬만이 아닌 진짜 책임투자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실패를 막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제거하며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일구는 한 수단이 될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문과 부패를 뜻하는 ‘달라스 스타일’이란 말 대신, 어느 날 전세계적으로 ‘재벌 스타일’이란 조어가 등장해서 우스꽝스레 통용되기 전에 우리들의 귀중한 자산인 재벌을 변화시켜야 한다. 미루지 말고 지금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