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과 독대는 '공짜 점심'이었을까

대가성 의혹 짙은데도 기업들 억울하다고 주장

2016-11-18     한광범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외신에서도 제정러시아를 파멸로 이끈 요승에 빗대어 '한국판 라스푸틴' 사건으로 보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창피할 지경이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에게 국정을 의지하며 벌어진 일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정호성 부속비서관에게 "최 선생님에게 컨펌(확인)했나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도  좌지우지했다고 하니 그 위세는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박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씨는 각종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물론 국정을 자신의 돈벌이로 활용했다. 나라를 사실상 제멋대로 부릴 수 있다고 착각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측근 차은택씨 등도 국정농단과 돈벌이에 동참했다. 이만하면 비선실세를 넘어 비선황제가 아니었나 착각이 들 정도다.

 

국정농단으로 사회 곳곳이 유린당했다. 이화여대는 쑥대밭이 됐다. 최씨가 마흔 살에 낳는 자신의 딸을 무리하게 대학에 넣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했다. 여러 교육 종사자들은 여기에 동조하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씨 행동을 막으려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은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공직에서 쫓겨났다.

 

대기업들도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중심에 서있다. 최씨 등은 문화와 스포츠 융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걸고 만들어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다. 18개 그룹(53개 기업)은 이들 재단에 총 774억원을 냈다. 최씨는 재단 출연금을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하려 했다. 일부 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수십억원 지원 요청도 받았고, 다른 일부 그룹은 차은택씨 회사에 광고 물량을 몰아주기도 했다. 최씨 회사에 수십억원을 별도 지원한 그룹도 있다.

 

기업들은 억울해한다. 박 대통령이 모금을 독려했고 의례적으로 하던 '순수한 마음'에서 한 자발적 모금이었다고 말한다. 별도 지원 역시 최씨의 협박에 의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드러난 일부 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협박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재벌 상당수는 출연금과 기부금을 내는 시점에 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와의 독대 전 기업들로부터 '해결해야 할 현안 사항'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안에는 경영권 승계 관련 문제, 총수 사면 여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총수들이 쉽게 잡긴 힘든 대통령과의 독대 시 그룹의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자연스럽게 대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재벌들의 과거 정경유착 행적도 이런 의심을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인데도 '순수한 마음'뿐이었을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이 "재벌의 탐욕"이라며 "재벌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 돈으로 매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재벌들이 김 전 대표 발언에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학의 기본되는 문장을 상기해보자.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