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은택, 영상제작비 2억8000만원은 상식 밖"
업계 “3일 간 한 행사도 그보다 금액 적어”…유령회사 내세운 차은택식 하청게이트 논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47‧구속)씨는 그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된 ‘무기’인 영상을 도구삼아 다양한 일감을 하청으로 수주했다. 검찰 수사결과 차씨가 유령회사를 고리로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영상 제작 하청업무도 수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본지가 업계 관계자를 만나 취재한 결과, 당시 차씨는 업계의 통상적인 평균거래가격을 크게 웃도는 금액을 일감 명목으로 수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은택 씨가 지난 11일 전격구속되면서 차씨에게 적용된 혐의도 눈길을 끌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차씨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공범), 공동강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했다. 법원은 이들 혐의에 대해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중 알선수재는 그동안 차씨에 대한 여러 보도에서도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혐의다. 검찰은 차씨가 2014년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만찬 및 문화 행사 용역업체 선정대가로 2억8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 금액은 일감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오고 갔다. 차씨를 세상에 알린 영상 제작이 표면적인 명분이었다.
당시 행사는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의해 주도됐다. 다만 만찬과 문화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했다. 실제 2014년 12월 12일 문체부는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만찬 개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 행사의 수의계약을 맡은 A사가 행사업체 B사에 하청을 주고 다시 B사가 엔박스 에디트에 재하청하는 구조다.
엔박스 에디트는 차은택 씨가 실소유주인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로 알려져 있다. 구속된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대표로 있는 ‘머큐리포스트’와도 주소지가 같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달 31일 엔박스 에디트와 차 씨가 대표인 아프리카 픽쳐스, 차 씨 최측근 김홍탁 씨가 대표로 있어 역시 차 씨 실소유주 의혹이 불거진 플레이그라운드를 압수수색했다.
정상회의와 컨벤션을 대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본지 기자와 만나 차씨가 받은 금액이 업계 상식을 완전히 무시했음을 증언했다. 검찰이 이 금액을 정상 거래가 아닌 만찬 및 문화 행사 용역업체 선정대가로 본 까닭을 설명해준 셈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개입의 경우, 차 씨에게 2억 8000만원의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됐는데?
차은택 씨가 일감을 수주하는 과정을 보니 말이 안 나오더라. 아무리 큰 행사더라도 영상제작비가 2억8000만원인 경우는 없다. 영상제작에 쓰이는 영상 소스가 있다.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외국정상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이기 때문에 한국을 홍보하는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나온 소스를 편집하는 정도다. 2억 8000만원은 (업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다.
홍보영상 분량은 보통 얼마나 되나?
길지 않다. 시작할 때 트는 인트로(intro) 영상은 보통 1분 30초를 안 넘는다. 주제영상은 보통 3분 내외다. 즉 길어야 5분이다. 그게 2억8000만원이라는 거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최근 (우리 업체가) 한 행사를 맡았다. 그 행사에서 밥을 3번 제공하고, 높이10m짜리 무대 만들고 시각효과도 넣고 영상도 만들어서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심지어 3일 동안 행사를 했으니 3번을 (반복) 한 거다. 당연히 영상도 여러 차례 들어갔다. (차은택 씨가 관여한) 정상회의는 한번 들어가는 영상에 2억 8000만원을 줬다는 얘기다. 말이 안 된다.
업계에서는 정부 입찰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커졌을 것 같다.
당연하다. (업계에서) 사장이 해야 하는 역할이 ‘이 입찰 되게 해달라’고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이 입찰에 들어가도 되냐’ (묻는 것)이다. 이 입찰이 ‘손을 탄 게 아닌지’ 확인하는 거다. 정상회의에 입찰하는데도 제안서 작성부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금액이 3000~4000만원이 쓰인다. 건설업계 같은 경우 제안에 참여해서 떨어져도 리젝션 피(rejection fee)를 받는다. 우리업계는 그런 것도 없다. (그러니) 몇 번 떨어지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구조다. (그런데) 권력 분탕질이 여기까지 미친 거다.
하청은 차씨가 애용한 ‘돈 버는 방식’이다. 차 씨는 이미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 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11월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영상제작에 쓰인 8872만원의 예산이 차 씨 소유로 의심되는 ‘엔박스 에디트’라는 유령회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에서 ‘늘품체조’를 직접 시연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오프닝 동영상 1편, 체조 시연 동영상 3편 등 10분 분량의 동영상 제작을 위해 당초 7775만원이었던 예산이 정산 후 8872만원까지 늘었다. 엔박스 에디트는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진 지난 9월 돌연 폐업했다. 또 차씨는 본인이 전시‧영상감독으로 일한 2015년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영상제작 재하청 선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차씨가 전면에 나서 운영한 아프리카 픽쳐스도 ‘하청 게이트’에 휘말렸다. 16일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일기획은 공사로부터 ‘2013년 국내외 한국관광 브랜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사업 외주를 받았다. 이후 제일기획이 아프리카픽쳐스에 다시 영상 제작 하청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