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간 소음에 시달리는 원룸 거주자
원룸 경계벽은 베니어판…방음·방화에 취약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살던 윤하경(24)씨는 지난해 겨울 급하게 방을 비워야 했다. 주인이 방을 빼달라고 요청한 탓이다. 윤씨가 방을 뺀 층에는 한달만에 산부인과가 들어섰다. 주인은 월세방 6개의 경계벽을 허물어 그 자리에 병원을 들였다. 경계벽이 허물기 쉬운 베니어(Veneer) 합판으로 시공된 터라 공사가 빨리 끝났다. 베니어는 얇은 널빤지를 겹겹이 포개 만든 합판이다.
윤씨는 “얇게 세운 가벽(경계벽) 탓에 사는 동안 벽간 소음에 시달렸다. 옆방 입주자의 통화 내용을 받아쓸 수 있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베니어 합판은 튼튼하지 않아 못질하지 못했다”며 “입주시 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 모두 베니어 합판 가벽과 소음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벽간 소음에 대한 규정도 없어 제대로 된 항의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신축 원룸 내벽을 두드리면 ‘텅텅’ 소리가 난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입주민들이 벽간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신축 원룸 경계벽 다수는 내구성 약한 베니어 합판으로 이뤄져 있다.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어진 벽은 소음과 화재에 취약하다.
기자는 서울 시내 원룸 공사 현장 5곳을 방문했다. 베니어 합판으로 마감한 벽이 쉽게 목격됐다. 내벽 뿐만 아니라 외벽도 베니어 합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문동 소재 공인중개사는 "베니어판이 싸다보니 원룸 경계벽은 주로 베니어판으로 짓는다"라고 말했다. 베니어 합판 외벽은 소음뿐 아니라 여름·겨울철 단열에도 취약하다.
2016년 개정된 건축물 에너지 절약 설계 기준에 따르면 공동주택은 벽 두께(외벽 기준)를 최소 155㎜로 시공해야 한다. 대학가 원룸 대부분은 공동주택이 아닌 다가구주택에 속한다. 다가구주택에 대한 건축물 에너지 절약 기준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다.
공사 현장 인부 박 아무개 씨(53)는 “엄격한 검사가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 그냥 지어 달라는대로 짓는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선 아무래도 저렴한 베니어판으로 벽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소음 관련해는 주택건설기준 등은 경계벽 재질과 두께를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 법령은 30세대 이상 공동 주택에만 해당한다. 가구 수가 30세대에 못 미치는 다가구 주택에 대한 규정 사항은 미비한 상태다.
서울시 층간 소음 상담실 관계자는 “30가구 미만 다가구 주택은 건축법의 기준을 받는다. 주간 43데시벨(㏈), 야간 38㏈ 기준은 있지만 규제와 제재 조항은 따로 없다”며 "층간 소음은 건물주가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답했다.
베니어 합판 시공 벽은 화재에도 취약하다. 베니어 판은 불이 순식간에 번지기 쉬운 가연성 내장이기 때문이다.
대전 남부소방서 구조대장 한명수씨는 “베니어 판은 나무 재질이기 때문에 소방법상 방염처리해야 한다. 이는 호텔, 여관 등에만 강제조항이다. 가정집에 들어가는 베니어 판에는 방염처리를 강제할 규정이 없는 탓에 굳이 돈 들여 방염처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