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안정 내세우며 영구임대 예산은 90% ‘싹둑’
빈곤층‧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주거난 악화…슬럼화 지역으로 내몰릴 가능성
정부가 뉴스테이와 행복주택을 내세우며 서민 주거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펼치면서도 정작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최저소득 계층 대상의 주거예산은 대폭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예산 축소로 임대주택 입주시기가 더욱 늦어지다가 슬럼화 지역으로 내쫓기면서 삶의 질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영구임대주택 예산안으로 445억원을 편성했다. 이는 5년 전인 2012년 4014억원에 비해 90%, 그리고 올해 715억원 보다는 38%나 줄어든 수치다.
영구임대주택은 최저소득 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50년 이상 또는 영구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유형 중 하나다. 소득값으로 봤을 때 1분위, 2분위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 모자가정, 저소득층 국가유공자와 사회적 약자인 고령자, 빈곤층, 장애인 등을 입주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최저소득계층의 영구임대주택 수요가 여전히 많은데도 예산은 큰 폭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통상 영구임대주택은 공급물량이 부족해 기존 거주민이 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기간이 평균 1년 3개월 가량 소요되고, 현재도 3만 가구 이상이 입주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아파트 준공까지는 2~3년 가량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2018~2019년에는 입주하지 못한 대기 가구수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토교통부는 예산 축소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지자체를 비롯한 주민의 반대가 심해 신규부지 확보나 사업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실제 소득분위가 높은 부유층이 주민의 주를 이루는 강남3구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강남구에 3개의 단지가 있고, 서초구나 송파구에는 영구임대주택이 없다.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예산 절감 차원이 아니라 민원발생으로 인한 미착공 지역이 있기 때문에 예산이 줄은 것”이라며 “이들의 주거를 보장하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차원에서 또다른 방법인 매입임대주택과 전세임대주택 보급 등의 방법으로 저소득층 주거 다각화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차선책으로 내놓은 매입임대주택 정책이 되레 차상위계층을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넣는다는 지적도 있다.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은 도심 내 저렴한 지역 가운데 노후한 다세대 주택 등을 사서 이들에게 장기 또는 2년씩 재계약하는 전세로 보급하는 형태다. 때문에 아무리 공급호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아파트를 새로 건설해 제공하는 것과는 삶의 질 차이가 커 보여주기식 안이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위원의 한 보좌진은 “서민 취약계층 주거안정에 중점 둔다며 최고 월세 100만원 수준의 뉴스테이 공급을 늘리고 홍보에 주력하고 있지만,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최저소득 계층 대상의 주거정책은 축소하고 있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정책이란 비판이 제기될 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예산정책처 한 관계자는 “국토부는 최저소득에 대한 주거복지를 다변화로 대기수요 가구수가 수년 전에 비해 줄었으니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매입임대주택 공급에 의한 감소인지 아닌지 명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설령 그렇다쳐도, 환경 열악한 지역의 다세대 주택을 사서 전세로 보급하는것과 아파트를 새로 건설해서 공급하는 것에 삶의 질 차이는 크다고 본다. 쉽게만 가려고 하지말고, 최저소득계층의 실질적인 주거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해 영구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예산을 적정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