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같던 유통 재벌 여름 삼국지
추락 롯데, 사면 CJ, 내실 신세계
롯데·CJ·신세계 유통 재벌 3사는 올해 여름을 뜨겁게 보냈다.
지난해 하반기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날을 보낸 만년 1위 롯데는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로 총수일가 대다수가 수사 선상에 오르며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총수 구속 상황 속에서 조용히 정부 눈치를 살펴오던 CJ는 총수 사면 후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형 매물에 대한 속속 추진 중이다. 두 그룹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여름을 보낸 신세계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인 쇼핑테마파크를 경기도 하남에서 오픈하며 내실을 다졌다.
◇'끝 모를 고난' 롯데, 미래마저 어둡다
유통시장의 절대 강자 롯데는 지난해 촉발된 경영권 분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올여름 검찰 수사로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에 참여한 총수일가 전원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6월 표면화된 검찰의 롯데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2개부(특수4부·첨단범죄수사1부)가 동원될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6월 10일 신동빈 회장 및 신격호(95) 총괄회장의 자택과 집무실 및 그룹 정책본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 인력 240여 명을 동원했다. 동원 인력만 놓고 보면 역대 최대 규모로 전해졌다. 확보 증거 서류 등만 트럭 7대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적으로 압수수색을 받은 계열사는 늘었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천명해온 검찰의 대기업 수사 방식과도 사뭇 다르다. 검찰은 롯데 측의 증거인멸 시도에 따른 것이며 모든 의혹을 저인망 식으로 점검하는 것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롯데는 그동안 주요 대기업들과 달리 기업 비리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로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이마저도 총수일가는 처벌을 피해나갔다.
총수일가의 주요 혐의를 보면 ▲신격호 3000억원대 탈세 및 780억원대 배임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400억원대 횡령 ▲신영자(73)롯데장학재단 이사장·신유미(33) 호텔롯데 고문·서미경(55)씨 3000억원대 탈세 ▲신유미 100억원대 횡령 등이다. 이밖에 그룹 차원에선 ▲일본 롯데물신 200억원대 통행세 지급 의혹 ▲롯데케미칼 270억원대 소송사기 의혹 등이다.
검찰은 이 같은 의혹들과 관련해 지난 1997년 그룹 부회장에 오른 후부터 한국 롯데를 총괄해온 신동빈 회장이 깊숙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 등에선 이번 롯데 수사가 경영 비리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각종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롯데월드타워 공사는 잠실에서 불과 2㎞ 떨어진 서울공항 안전 문제로 김영삼 정부부터 노무현정부까지 일관되게 반대한 바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드를 앞세운 이명박정부는 전격적으로 2009년 허가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 측이 이명박정부와 공군 측에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그동안 정치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돼 온 바 있다. 실제 롯데월드타워 인허가 문제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롯데 시련은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로 롯데는 향후 경영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경영권 안정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추진했던 호텔롯데 상장은 올해초 무산된 후 기약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또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였던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 확보 역시 검찰 수사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검찰 수사로 총수일가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린 것은 더 문제이다. 일본 롯데 지배구조에서 일본인 임직원들의 입김은 경영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일본 임직원들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경영권을 흔들 수도 있다도 재계에선 보고 있다.
◇ 극적 분위기 반전 이룬 CJ…인사로 총수 복귀 과시
CJ그룹은 지난달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이재현(56) 회장이 사면·복권된 후 반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특사 명단에 올랐다. 형기도 거의 복역하지 않았지만 유전병을 앓고 있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한 인도적 결정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이 회장 사면 후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인사다. CJ그룹은 사면 발표 닷새가 지난달 17일 변동식 CJ 사회공헌추진단장을 CJ헬로비전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 사면 후 처음 단행한 고위직 인사다.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재계 안팎에서는 오너가 나서 매각 무산 후폭풍에 휩싸인 CJ헬로비전 조직을 추스르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을 전면 불허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7월 4일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에 발송했다.
사면 발표일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이달 12일에는 대대적인 임원인사가 단행됐다. 이날 인사의 무게감은 묵직한 편이다. 이 회장 복귀 후 첫 부회장 승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부회장 승진자는 CJ제일제당을 맡아온 김철하 사장이다. CJ제일제당 BIO연구소장을 거친 김 신임 부회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바이오통으로 꼽힌다. 바이오는 CJ가 미래 먹거리로 집중 공략하고 있는 사업이다. R&D 개발과 M&A 등 움직임도 공세적이다.
이날 CJ그룹 관계자는 "지난 3년간 그룹 위기상황으로 인해 보류한 기존 임원 승진 인사를 확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CJ그룹 안팎에선 될 사람이 됐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또 다른 CJ 관계자는 이번 승진에 포함된 몇몇 인사들에 대해 "아주 훌륭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들"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 새로운 유통실험으로 내실 다지는 신세계
롯데·CJ와 달리 신세계그룹은 오너리스크가 없었다. 두 유통그룹이 총수일가 문제로 고심이 깊어지는 사이 정용진(47) 신세계 부회장은 유통사업에 대한 고민을 본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경영자로서의 행보만 묵묵히 보여왔다. 신세계는 지난 1월 올해 투자규모가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인 4조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밝혔다.
투자 결과물은 최근 하나씩 공개되고 있다. 그중 정 부회장이 가장 공일 많이 들인 최고의 야심작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이다. 세상에 없는 복합쇼핑몰을 만들어보겠다는 정 부회장의 야심이 이뤄낸 결과이다. 스타필드 하남엔 총 1조원이 투입돼 신세계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면적만 놓고 보면 축구장 70개 크기이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영상·사진·글 등을 올리며 스타필드 하남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다.
이마트도 다른 대형마트에 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자체 브랜드 힘을 키우기 위한 시도가 많았다. 이마트는 지난 8월 G마켓과 손잡고 자체 브랜드 피코크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 이제껏 오픈마켓에서 피코크 제품을 선보인 적은 없었다. 또 자체 패션 브랜드 데이즈 고급화를 위해 해외 명품의류 및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밖에 해외 진출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7월 몽골에 이마트 브랜드를 수출하며 본격적인 몽골 시장 확장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 호찌민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20년까지 2억 달러(2187억원) 규모의 대형마트·슈퍼마켓 등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본격적으로 베트남에서의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이마트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