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8일 오후 신격호 방문조사…서미경 여권 무효화 준비

3000억원대 탈세 등 조사…"서씨 모녀 준법의식 결여, 호락호락 안 넘겨"

2016-09-08     한광범 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7월 병원에서 퇴원해 거처가 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오고 있다. / 사진=뉴스1

 

검찰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해 8일 오후 방문조사를 진행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8일 오후 3시 30분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위치한 신 총괄회장 집무실로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1시간 30분가량 신 총괄회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 방문조사는 신 총괄회장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3일경 신 총괄회장 측에 8일 오전 10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바 있다. 이에 신 총괄회장은 고령과 좋지 않은 건강상태로 출석이 어려울 것 같다며 방문조사를 해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

 

이 같은 요청에 검찰은 7일 수사팀 검사 2명과 수사관 1명을 보내 신 총괄회장의 상태를 직접 살펴봤다. 검찰은 2시간가량 동안 신 총괄회장 건강상태를 살피고 주치의를 만나 협의를 진행한 후 돌아갔다. 이 같은 방문조사를 토대로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직접 출석하는 것이 어렵다고 결론 내리고 8일 방문조사를 최종 결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본인이 출석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강제로 나오라고 하긴 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폐렴으로 입원했다 퇴원했다고 해서 그런 걸 감안해 방문조사를 결정했다"고 설명햇따.

 

◆법원 "지남력 부족·상실" 이미 판단…일각선 조사 실효성 의문도 제기

 

앞서 서울가정법원은 지난달 31일 신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결정을 내리며 신 총괄회장이 치매약을 꾸준히 복용해왔고 정신상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간·장소에 대한 지남력(상황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상실된 것으로 보이는 진술을 여러 차례 했다", "조사관 조사 결과에도 지남력, 인지능력 저하가 나타났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은 가정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신 총괄회장 조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해본 경험도 고려됐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에 대해 이번에도 문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 신 총괄회장이 심신상실 상태가 아닌 만큼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검찰의 신 총괄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법원이 지남력 상실이라고 판단했다는 걸로 보아 가벼운 치매 증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수사에 응할 상태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가사전문 변호사도 "신 총괄회장이 성년후견 재판 과정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했던 것으로 안다"며 "유의미한 조사는 어려워 보인다"고 예상했다.

 

재계에선 신 총괄회장 신병관리를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맡고 있는 점도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치매라는 롯데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신 전 부회장으로선 검찰 수사가 어려운 상태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방문 조사하기 위해 거처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뉴스1

 

검찰은 신 총괄회장을 상대로 수천억 원대 탈세 의혹, 수백억 원대 배임 의혹 등 롯데 경영비리 전반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신동빈(61) 회장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도 신 총괄회장을 통해 알아볼 방침이다. 검찰은 신 회장이 탈세 및 배임이 이루어질 당시 그룹 정책본부장으로 그룹 살림을 총괄던 점을 들어 여기에 깊게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큰딸 신영자(73·구속기소)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8)씨와 딸 신유미(33) 호텔롯데 고문에게 지난 2005~2010년 사이 차명으로 보유 중이던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증여하며 증여세를 내지 않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신격호 "지분 증여시 탈세 아닌 절세 지시"
 
롯데홀딩스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회사이다. 비상장 회사로 액면가는 50엔(약 540원)이지만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만큼 실제 가치는 수천 배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홀딩스가 2012년 말 세계 3대 회계 컨설팅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PwC)에 의뢰해 받은 주식 평가액은 주당 26만 엔(약 280만 원)이었다. 대략 액면가의 5200배이다. 
 
총 발행주식이 434만주임을 감안하면 롯데홀딩스 전체 주식가치는 1조 1284억 엔(약 12조 원) 규모이다. 6.2% 지분 가치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699억 6080만 엔(약 7570억 원)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롯데 총수일가의 탈세액이 300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대 최고 탈세액"이라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은 아울러 서씨 회사에 롯데시네마 매점 등의 일감을 몰아줘 관련 계열사에 780억 원 손실을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전날 수사팀 방문 당시 검사들의 탈세 의혹 질문에 대해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먼저 "시효가 지난 것 아니냐"고 말해 공소시효 문제를 지적했다. 또 "주식을 받은 사람이 증여세를 내야지 준 사람이 내는 것 아니지 않나"라고도 반문했다. 아울러 "나는 직원들에게 절세를 지시했다. 탈세를 지시한 적은 없다"며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분 증여가 본인의 의지였지만 탈세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해명과 관련해 조세범 공소시효가 짧은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탈세에 공모했을 경우 공범이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아울러 일본에 체류하며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서씨 모녀에 대해서도 여권 무효화 조치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검찰은 법무부·외교부에 서씨 모녀 여권을 무효화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여권이 무효화 될 경우 서씨 모녀는 일본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돼 강제추방 당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부터 형사 사건 발생할 경우 일본에 가서 귀국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엔 호락호락 넘길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수 일가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사법 절차에 응하지 않는 걸 보면 대한민국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이라며 "준법의식이 결여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과 정책본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추석 연휴 이후 신동빈 회장을 소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