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CD금리 담합 의혹 '면죄부'…피해자 있지만 책임지는 이 없어
금융소비자 피해 4조원…야당·시민단체 "검찰 고발장 낸다"
은행 CD금리 담합 의혹 사건의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금융소비자가 정상보다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림으로써 입은 피해액이 4조원이 넘는다. 피해자 수는 500만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가 무혐의 결론을 내 사건의 책임자 규명과 실체는 사실상 묻혔다. 참여연대는 검찰에 이 사건을 고발하기로 했다.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는 CD가 발행돼 유통시장에서 거래될 때 적용되는 금리다. 코픽스 금리와 함께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기준금리로 이용된다.
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위원들은 담합 의혹 대상 시중은행에 사실상 무혐의를 결정했다. 담합 의혹 대상 은행은 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SC은행 등 6개 시중 은행이다.
이 은행들의 CD금리 담합 의혹 사건 전말은 이렇다. 지난 2012년 7월 공정위 심사관들은 시중 금리가 하락하던 시기 은행들 CD금리가 유지되자 담합 의혹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 심사관들은 이들 은행이 2009년부터 CD발행 금리를 금융투자협회에서 전일 고시한 수익률 수준으로 발행키로 담합한 것에 혐의를 뒀다. 담합으로 금리를 높여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관들의 심사보고서는 6개 은행의 담합 행위 개연성을 제시했다. 지난 2월 공정위 심사관들이 전원회의에 상정한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6개 대형은행들은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담합행위 금지를 위반했다. 시정명령과 함께 수조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치의견을 내렸다.
심사보고서를 살펴보면 2009년 이전 6개 은행의 전일 금융투자협회 고시수익률(민평금리)과 같게 발행한 CD금리 비율은 46.9%다. 그러나 2009~2011년에는 107건 중 96.3%인 103건이 민평금리와 같다. 2012년 이후도 민평금리와 동일하게 발행되는 비율은 84.3%로 CD금리는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CD와 유사한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의 경우 은행채 민평금리와 같게 발행되는 비율은 11%~21%였다.
담합 의혹 대상 은행 CD발행 담당자들은 합의 성립 시기에 발행시장협의회 메신저를 통해 CD발행 금리 관련 의사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조사 4년만에 공정위 전원회의는 지난 6일 6개 시중 은행의 CD금리 담합 의혹의 사실관계의 확인이 어렵다며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6개 은행이 취한 이익은 70조원이며 이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는 4조원에 달한다. 책임지는 이는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2015년 기간 6대 은행의 CD금리 연동대출에 따른 이자수익은 70조원으로 연간 10조원이 넘는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이 자금조달 비용 증가에도 CD금리를 높게 유지한 것은 비정상적인 행위다. 이는 은행의 CD금리가 다른 가계대출 금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은행은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금리를 상승시켜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다. 이는 은행법상 명백히 불공정거래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소비자 피해 큰 담합 의혹 사건 묻혀선 안돼…검찰 고발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소비자 피해만 4조원에 달하는 은행권 CD금리 담합 의혹 사건이 이대로 묻혀선 안된다고 우려했다. 이 사건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사건이다.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거나 고발요청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현재 움직임이 없다.
제윤경 의원은 "대형 6개 시중은행들은 법위반 행위로 수조원대의 부당이득을 올려 불특정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이 사건을 이대로 묻어둘 수 없다"며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고발요청권을 행사해 실체를 밝히고 소비자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 전원회의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당국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에서 은행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초 공정위 심사관들이 6개 은행에 부과한 과징금은 5조원이 넘는 대규모 금액이다"며 "농협은행, 우리은행 등은 조선, 해운업에 익스포져(위험노출액)가 많다. 당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공정위 전원회의가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가 최근 대규모 담합 소송에서 연이어 패한 점도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을 움츠러들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소송 패소 등으로 환급한 과징금은 매년 큰 폭 늘었다. 2012년 130억원, 2013년 302억원, 2014년 2518억원, 2015년 3572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5년 고액 환급이 발생한 것은 과거에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에서 잇따라 패소했기 때문이다. 2011년 공정위는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5개 정유사에 25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건은 담합 합의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했다. 공정위는 2013년 남양유업에 12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던 건도 일부 패소했다. 공정위는 가산금을 포함해 126억1600만원을 환급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원에서 민사 소송을 냈다. 그러나 공정위에서 무혐의 결론 난 사건인데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마저 없다면 민사 소송에서 이기기 어렵다. 검찰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은행권 CD금리 담합 의혹 사건에 대해 소비자 1700여명이 참여한 소비자 소송을 진행중이다.
김성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부소장은 "CD발행금리를 금융투자협회가 고시하는 전일 수익률로 정하는 것은 CD금리의 가격 혹은 가격의 결정 방식을 합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라며 "CD금리 담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 등은 이번 건에 있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6개 시중은행 CD금리 의혹에 대해 검찰은 조속히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은행 담합 여부와 그로 인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규모 등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강제수사권이 있는 검찰이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일으킨 이 사안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 8월중 검찰에 고발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공정위가 CD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4년간 끌어오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무혐의 결론을 냈다. 은행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면 기업 구조조정에 영향이 가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본다"며 "소비자들은 4조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고 말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19조 5항은 해당 거래분야 또는 상품·용역의 특성, 해당 행위의 경제적 이유 및 파급효과, 사업자 간 접촉의 횟수·양태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그 행위를 그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담합을 합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