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 뛰어든 KBS, 외주제작사들 반발

내달 '몬스터 유니온' 출범…"골목 상권 침해" vs "외국 자본 침탈 견제"

2016-07-20     고재석 기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를 찾은 관람객과 바이어들이 각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뉴스1

 

내달 설립되는 KBS의 자체 콘텐츠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이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일선 제작사 등 업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와 다를 바 없다’는 말까지 터져 나온다. KBS는 이 같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그 배경에는 저작권이 있다.

지난 6일 KBS 측은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을 8월 중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BS와 KBS 미디어, KBS N 등 계열사가 공동 출자한다. 몬스터 유니온은 드라마, 예능 등 방송콘텐츠를 기획‧제작할 방침이다.

영입인사 면면도 화려하다. CEO는 싸이더스 매니지먼트 본부장을 거친 박성혜 대표가 맡는다. 문보현 전 KBS 드라마국장이 드라마부문장을 맡고, ‘개그콘서트’로 유명한 서수민 CP가 예능부문장을 맡았다. 그 외에도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한 스타PD들이 대거 합류했다.

업계 반발은 거세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몬스터유니온이 “방송영상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인배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장은 “거대 방송사가 아예 자회사를 설립해 자체 제작을 하려 한다”며 “외주 제작 시장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업계 반발에서 잘 나타내듯 몬스터 유니온은 일종의 ‘자체 외주 제작사’다. 외주 제작시장은 지난 1990년 7월 개정된 방송법에 따른 외주 의무편성 제도를 근간에 둔다. 이듬해 3%로 적용되기 시작한 의무편성 비율은 2001년에 31%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전체 방송시간의 40% 이내에서 외주 의무편성 비율이 적용됐다. 다만 제작업계 측은 최근 방송사의 외주 의무편성 비율이 35%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외주 제작사 도입 이유가 지상파 독과점 해소에 있다는 점이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방송 외주제작 25년의 성과와 과제’에서 “외주제작 프로그램 의무편성 제도는 제작주체 다원화, 지상파 네트워크 제작부문 분리를 통한 독립제작사 육성, 방송 제작 시장의 지상파 독점해소”를 목표로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 제도는 방송 콘텐츠 시장에 경쟁을 촉진시켜 다양하고 질 좋은 프로그램 공급으로 시청자 복지 제고를 달성하고자 도입됐다”고 덧붙였다. KBS 외주제작사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KBS는 왜 이 같은 무리수를 뒀을까? KBS의 속내를 읽을 열쇳말은 저작권이다. 이제까지 제작 시장에서 저작권은 지상파 방송사가 독점했다. 제작비를 대는 대신 저작권을 갖는 구조다. 영세 외주제작사가 사실상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이 이 같은 구조를 형성시킨 배경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그 전까지 방송사는 드라마 제작비를 대면 저작권의 상당수를 갖고 있었다”며 “그런데 지난해부터 저작권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한류시장이 커지면서 중국자본이 국내 제작사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 게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김인필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국내 드라마제작사는 드라마 외주제작을 통해 방송국에 제작비를 받고 판매권을 이관하는 구조에 국한됐다"며 "지금은 외부자금을 투자 받아 드라마 제작 후 판권을 확보하고 투자수익을 나눌 수 있는 구조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환경 변화의 핵심은 중국자금 유입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제작사 측 판단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몬스터 유니온 설립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안인배 협회장은 “우리도 시도를 계속해왔다”며 “제작비를 (방송사로부터) 거의 받지 않는 대신 권리를 요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태양의 후예’ 같은 프로그램들”이라고 밝혔다. KBS는 태양의 후예 40%의 권리만 갖고 있다.
 

KBS2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제작발표회 모습. / 사진=뉴스1

사실 태양의 후예는 KBS 입장에서 아쉬운 작품이다. 태양의 후예 방영 즈음 KBS 관계자는 한 강의 자리에서 “KBS권리가 적어서 아쉽지만 그나마 완판 된 광고수익 덕에 다행”이라며 “100%가 아니라 반이라도 KBS 권리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이제는 방송사가 관행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방송사 내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최근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제작사 입김이 강하다. 홍정표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함부로 애틋하게는 한국과 중국에서 흥행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특히 삼화네트웍스와 IHQ가 공동제작하고, 저작권을 제작사가 보유하고 있어 부가판권 시장에서 높은 수익 실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화네트웍스는 국내 대표적인 제작사 중 하나다.

이렇게 되다보니 방송사 입장에서도 저작권 확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류 시장이 커지면서 저작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커졌다. 결국 방송사가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KBS 내부 분위기도 달라졌다. 콘텐츠사업부가 저작권 확보 뿐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까지 업무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지난해 인기를 끈 KBS드라마 ‘프로듀사’는 콘텐츠사업부와 예능국의 공동기획으로 시작됐다.

올해 하반기 방영되는 ‘화랑’은 KBS의 의지가 확고하게 들어간 작품이다. 화랑은 KBS가 100% 권리를 가진 드라마다. 수신료 인상이 지지부진하고 지상파 광고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결국 KBS가 아예 제작사를 만들어서 한류시장을 통해 돈 벌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KBS도 정면대응하는 모양새다. 반박 논리의 핵심은 중국자본 유입에 맞서는 '보호론’이다. 15일 KBS는 입장문을 내고 “현재 국내 콘텐츠 제작기반은 해외자본이 밀물처럼 몰려오면서 급속히 잠식되고 있다”며 “거대 자본을 앞세운 마구잡이식 외주사 사냥은 장기적으로 국내 제작환경의 피폐화를 가져오고 블록버스터급 한류 콘텐츠가 만들어져도 그 과실은 온전히 해외자본이 가져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제작시장에서 중국자본 유입은 점점 확대되는 모양새다. 국내 대표적 제작사인 초록뱀 미디어는 지난해 11월 유상증자를 통해 중국 DMG그룹으로부터 2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한 바 있다. KBS 입장에서 이 같은 반박논리를 적극 내세우는 배경이다. 

문제는 국내 제작업계에서 중국의 대규모 자본을 끌어오는 제작사가 소수에 그친다는 점이다. 되레 외주제작 시장 내에서도 대형업체와 소형업체 간 양극화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결국 이는 고스란히 산업 생태계와 콘텐츠의 위기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의 제작시장 참여 이후 변한 영화계의 선례가 참조대상이다.

영화제작자 출신의 한 연구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제작사가 힘이 강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자체제작을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며 “제작시장이 작아지니 군소제작사가 난립하게 되고 이러다보니 작품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보장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특정 감독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식으로 생태계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일단 상황은 KBS에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방송법도 KBS에 호재로 작용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2월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상파 특수관계자 제작 프로그램의 편성 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특수관계자는 방송사 자회사나 지역사를 가리킨다. 당시에도 외주제작업계는 콘텐츠 수직계열화 정책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