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016 내수 중간점검]① 럭셔리 플래그십, 제네시스만 날았다
제네시스, 상반기 3만 4411대 팔려 호조…아슬란·K9은 깊은 판매부진 늪에
2016-07-04 박성의 기자
올해 상반기 자동차 내수시장은 격변기였다. 르노삼성과 한국GM, 쌍용차가 연달아 신차카드를 빼들며 현대·기아차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현대·기아차 올해 내수판매 목표는 현대차 69만3000대, 기아차 52만5000대 등 총 121만8000대다. 해외시장 경쟁이 날로 격화되는 가운데, 내수 판매에 금이 간다면 현대차그룹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현대차그룹의 차종별 판매량을 분석하고 하반기 전망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현대차그룹도 고급차시장을 미래 성장 동력원으로 점찍었다. 고급차는 수익성이 대중차에 비해 높다. 또 고급차를 통해 브랜드 전체 이미지 상승을 꾀할 수 있다. 현대차가 플래그십 세단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2016년 상반기 현대차는 고급차 시장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정의선 부회장 주도로 야심차게 선보인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기대치를 웃도는 성적을 냈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위 모델인 아슬란과 K9 부진이 뼈아팠다.
◇ 제네시스, 정의선 도전 통했다
제네시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야심작이다. 신차 개발부터 인재 채용까지 정 부회장의 손을 거쳤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도 참석, 영어 발표를 통해 G90(국내명 EQ900)을 소개했다.
정 부회장은 당시 “현대차는 럭셔리차 시장에서 후발주자지만 경쟁사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며 ”타협 없는 럭셔리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3분58초 발표 동안 럭셔리라는 단어만 5번 사용했다. ‘현대차는 대중차 브랜드’라는 고정관념을 지워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올해 상반기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정의선의 ‘한 수’는 묘수가 됐다. 제네시스 브랜드 판매량은 내수시장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 제네시스와 에쿠스 합산 판매량은 2만2177대였다. 올해 에쿠스가 EQ900라는 이름으로 제네시스에 편입된 이후, 상반기 제네시스 브랜드 총 판매량은 3만4411대로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법인차 수요가 연초에 많이 몰렸고 에쿠스라는 이름을 버린 것도 신규 수요창출에 한 몫 했다”며 “외관 디자인과 인테리어 모두 기존 현대차보다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기존에 없던 브랜드의 차라는 호기심도 판매량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 아슬란·K9, 체급값 못한 판매량
제네시스가 쾌속질주하는 사이 현대차와 기아차 플래그십 라인에는 제동이 걸렸다. 각 브랜드 수위 모델인 아슬란과 K9 월간 판매량이 300대 밑으로 주저앉으며, 현대차그룹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상반기 아슬란 월 평균판매량은 182대다. 1월 266대가 판매된 이후 2월 151대, 3월 168대, 4·5월 176대, 6월 158대가 팔려나갔다. 한 체급 아래 차종인 그랜저의 상반기 월 평균판매량이 5000대를 상회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기아차 최중량급 모델인 K9 판매도 지지부진하다. 아슬란보다 사정이 낫지만 월 평균판매량이 프라이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K9은 1월 270대가 판매된 이후 2월 201대, 3월 271대, 4월 245대, 5월 231대, 6월 285대 판매됐다.
아슬란의 경우 부진이 장기화하자 업계에서 단종설까지 제기됐지만 현대차가 선을 그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슬란 단종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판매 증가를 위해 판촉 및 마케팅 활동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 현대차의 ‘제네시스 올인’, 양날의 검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주역은 제네시스였다. 고급차 내수시장을 독식하며 꾸준한 판매량을 보였다. 이 같은 호성적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달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두 번째 모델 G80은 영업일수 16일만에 사전 계약 대수 9300여대를 넘어섰다.
신형 벤츠 E클래스 외에는 뚜렷한 경쟁모델이 없어 G80 인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아슬란과 K9 부진이다. 상반기에도 두 차종의 신차 출시 계획은 잡혀있지 않다. 오히려 G80이 출시되면 아슬란과 K9 판매 저하 폭이 더 가팔라 질 수 있다는 잿빛 전망마저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 라인업에 힘을 실을수록 현대·기아차 플래그십 라인의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한 브랜드 상승이 다른 차종 판매저하를 동반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급차 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완전변경 모델 출시 없이는 판매 반등을 노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가 과거에 비해 고급차 생산기술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제네시스도 완성도가 높아 인기를 끌 수 있었다”며 “아슬란과 K9도 성능만 봤을 때는 준수하지만 경쟁모델에 비해 명확한 정체성이 없다. 과거보다 소비자 선택지가 많아진 상황에서 종합선물세트 같은 무난한 차로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