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흥행 좌지우지하는 스토리의 힘
캐릭터 자체가 브랜드 되기도…2차 창작물 흥행에도 절대적 영향력
2016-09-06 원태영 기자
과거 게임 스토리는 게임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가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게임 흥행은 물론, 게임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 흥행까지 좌지우지하는 등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게임 스토리의 역사는 1990년대 PC게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PC게임이 시장을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역할수행게임(RPG)의 인기가 높았다. 수 많은 게임업체들은 앞다퉈 RPG를 출시했다. 대표적으로는 소프트맥스에서 선보인 ‘창세기전’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유저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웬만한 소설·영화보다 몰입감 높은 스토리를 선보이며, 지금까지도 유저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게임 시장은 온라인게임 위주로 재편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불법복제가 성행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개발사들이 불법복제가 불가능한 온라인게임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초창기 온라인게임들의 스토리는 빈약했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 등 기존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들이 연달아 출시됐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계승했다기 보단 캐릭터와 세계관을 차용한 수준이었다.
이후 2004년 블리자드는 PC게임이었던 워크래프트를 활용해 온라인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전 세계에 선보인다. 블리자드는 이미 PC게임 시절부터 게임 스토리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블리자드가 그동안 선보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등도 뛰어난 스토리로 유저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WOW는 출시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국내 온라인게임의 빈약한 스토리에 실망한 유저들이 대거 몰렸다. WOW는 온라인게임의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기존 온라인게임들은 퀘스트라 불리는 일종의 임무수행 과정에 있어서 특별한 스토리없이 단순 작업을 시키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WOW는 아무리 작은 퀘스트하나에도 스토리를 부여했다. 유저로 하여금 스스로 퀘스트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게 만든 것이다.
특히 기존 워크래프트의 캐릭터와 세계관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그대로 계승했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스토리에 살을 더해 WOW의 스토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WOW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마치 자신이 실제 게임속 주인공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도 게임 스토리를 강화한 게임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2003년 출시된 넥슨의 ‘테일즈위버’는 소설 ‘룬의아이들’을 기반으로 제작돼 소설속 캐릭터와 세계관을 계승했다. 2004년 출시된 ‘마비노기’도 북유럽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스토리를 구성했다. 스토리에 따라 시즌별로 업데이트 버전을 출시해 유저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냈다.
전문가들은 게임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무형의 자원이 창출된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으로 캐릭터의 브랜드화와 2차 창작물 등을 꼽을 수 있다. WOW의 경우,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게임 속 캐릭터들 각각이 일종의 브랜드화 됐다. 특히 게임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아서스’라는 영웅 캐릭터는 원래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가 어둠에 물들어 타락하는 스토리를 가진 캐릭터로, 해당 스토리는 유저들 사이에서 WOW 최고의 스토리로 회자되곤 한다.
실제로 아서스의 스토리를 다룬 WOW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가 출시됐을 당시를 WOW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 유저들이 많은 상황이다.
앞서 소개한 테일즈위버, 마비노기 등도 뛰어난 스토리로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속에서 유저들은 만화, 소설 등 수많은 2차 창작물을 쏟아냈다. 이러한 관심속에서 넥슨은 마비노기 지적재산권(IP)를 이용한 액션 RPG 마비노기 영웅전, 카드게임인 마비노기 듀얼 등도 출시했다. 최근에는 게임사들이 자사의 인기 게임 IP를 활용해 캐릭터 상품 등도 선보이고 있다.
이 모든 2차 창작물의 중심에는 바로 뛰어난 게임 스토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잘 만든 게임 스토리 하나가 게임 흥행은 물론, 2차 창작물의 흥행까지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이다.
블리자드는 최근 출시한 1인칭슈팅(FPS)게임 오버워치에서도 뛰어난 스토리를 선보였다. 게임 출시전 유튜브 등에 각 캐릭터의 배경 스토리를 담은 영상들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들은 국내에서만 조회수 100만회 가까이를 기록했다. 대학원생 김형민(26)씨는 “주로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탄생 스토리 등을 접한 뒤 게임을 하면, 확실히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며 “최근에 비슷한 류의 게임이 많이 등장하는 상황속에서 뛰어난 스토리를 가진 게임에 눈길이 한번 더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게임 개발자 박재형(가명·30)씨는 “최근들어 게임을 개발할때, 스토리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반적으로 유저들은 게임 스토리가 재미 없으면 게임을 하지 않는다. 소수이긴 하지만 스토리 위주로만 게임을 선택하는 유저들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