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대중공업] “시한부 선고 받은 기분”...초상집 된 바드래

울산동구 8만명, 현대중에 생업...방어진 앞 상권 ‘폭삭’

2016-04-27     박성의 기자

망해간다는 말 들으러 왔나? IMF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

 

26일 구름 낀 울산 동구는 잔뜩 성나 있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방어진으로 향하는 염포터널. 머리 희끗한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방어진에 온 저의가 뭐냐며 쏘아붙였다. 나쁜 소식 하나 터질 때마다 언론 관심이 는다는 푸념이었다.

 

울산에서 13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는 박해서(63)씨는 셋째 동생이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살이 많이 빠졌다외지인들이 와 구조조정 심정을 자꾸 묻는다더라. 시한부 환자한테 죽는 심정 캐묻는 것과 다를 게 뭐냐고 반문했다. 

 

26일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우리가 잘되는 길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 사진=박성의 기자

울산 동구에는 박씨 8만명이 산다. 동구 인구 175000명 중 약 45%가 현대중공업 종사자와 하청 근로자, 그 가족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를 개최한 26. 4월 봄날에 분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한파에 넉넉했던 울산 동구 민심이 얼어붙었다.

 

정부는 이날 지난해말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5대 경기민감업종의 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한 후속조치를 점검했다. 화두는 적자 늪에 빠진 조선사 회생안이었다.

 

임 위원장은 3개 대형 조선사 합병은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은 이제까지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했지만 앞으로는 채권단이 선제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강도 높은 회생절차를 예고했다.

 

오후 3시가 갓 넘은 시간, 울산시 방어동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에는 철컹거리는 자재 하차 소리가 간간히 울렸다. 감색과 붉은색이 섞인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정부 발표로 인한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만난 결혼 1년차 노동자 강모씨는 예상대로다. 정부도 기업도 결국은 우리를 잘라낼 기회만 보고 있는 거 아니냐막막하긴 하지만 어쩌겠나.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요즘은 아내 볼 면목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현대중공업은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연결기준 매출 102728억원, 영업이익 3252억원을 기록하며 10분기만에 흑자 전환했다.

 

희소식이지만 웃을 형편이 못 된다. 실적개선은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흑자 영향이 컸다. 해양플랜트가 여전히 적자를 내고 있고 수주 전망은 잿빛이다.

 

현대중공업 직원 수는 작년 말 기준 27409명이다. 이중 10%만 잘려나가도 약 3000명이 직장을 잃는다. 협력사 직원까지 합하면 1만명 이상이 해고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정문 앞 바드래 마을. 마을명 비석 뒤로 현대중공업 크레인이 보인다.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 정문 앞 전하동 일대는 바드래 마을이라 불린다. 바드래는 현대중공업이 들어서기전 해안가였던 전하동의 지리적 특성이 담긴 한글 지명이다.

 

바드래 주민들은 구조조정 이야기가 돌때마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지갑을 닫자 이 일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바드래 주민들 생계에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매출이 적게는 20%에서 최대 50%까지 줄었다.

 

바드래 마을에서 8년째 음식점을 운영해 왔다는 박모씨(54)과거에는 협력사 사장들이 대낮부터 술도 먹고 반찬도 종류별로 시키고 했다. 덕분에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고 했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박씨는 지난달 (현대중공업 경영이 악화되며) 매상 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말 단골이던 협력사 사장 3명은 새해문자 대신 폐업했다는 문자를 보냈더라. 겉으론 위로했지만 막상 내 사정은 누구에게 토로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