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시장 ‘벽’이 깨져
국내·외 브랜드 간 소비자 이동...미니·랜드로버 등 잠룡 부상
한국 자동차 시장이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과거 수요층이 뚜렷이 구분됐던 국내·외 자동차 브랜드 벽이 허물어지는 모습이다. 대중차에 집중하던 국산 브랜드들이 대형 세단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수입차 수요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고착화됐던 브랜드 점유율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 그늘 아래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던 르노삼성·쌍용·한국GM 3사는 전략 신차를 출시하며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에서는 잠룡으로 평가받던 미니와 랜드로버 등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 제네시스에 무릎 꿇은 벤츠
과거 1억원을 호가하는 일명 ‘회장님 차’는 수입차 브랜드의 독무대였다. 벤츠 S클래와 BMW 7시리즈라는 걸출한 브랜드가 과점시장을 이룬 가운데, 현대차 에쿠스와 쌍용차 체어맨 등이국산 플래그십 자존심을 겨우 지켜냈다.
벤츠 S클래스는 지난해 1만대 넘게 팔려나가며 에쿠스(5158대)를 2배 차이로 압도했지만 올해 1분기 상황은 역전됐다.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내놓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선전하며 벤츠와 BMW 고급 라인업 판매량을 따돌렸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올 1분기(1~3월) 국내에서 총 1만6477대가 팔려나갔다. 그 중 제네시스 처녀작인 EQ900(해외명 G90) 판매량은 8210대다. 같은 기간 S클래스 판매량은 1722대에 그친다. 전년 동기(2953대) 보다 42% 급감했다. BMW코리아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신형 7시리즈는 455대 판매되며 경쟁대열에서 이탈했다.
제네시스가 독일 브랜드를 압도하며 쾌속질주하자, 인피니티와 렉서스 등 일본 고급브랜드도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그 동안 일본 수입차업계는 “전통이 없는 제네시스가 대형세단 시장에서 선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롤랜드 크루거 인피니티 글로벌 대표는 6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2016 인피니티 디자인 나이트’ 행사에서 “(고급차 시장에서) 경쟁 대상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제네시스와의 경쟁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 자동차 브랜드 절대강자가 없다
지금까지 국내 완성차시장은 현대·기아차가, 수입차 시장은 벤츠·BMW·아우디폴크스바겐 독일 3사가 주도해왔다. 이들 밑에서 조용한 행보를 보이던 브랜드들이 신차라인업에 변화를 주자 고착됐던 국내·외 브랜드 점유율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현대·기아차가 독점하던 세단시장에서는 한국GM과 르노삼성이 선전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9월 대형세단 임팔라를 들여와 재미를 톡톡히 봤다. 월평균 1000대가 넘게 판매되며 연간 최대 2만여대 수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SM시리즈가 노후화되며 판매량이 급감했던 르노삼성은 SM6로 대반전을 이뤘다. 중형세단 SM6는 출시 첫 달인 3월 6751대가 팔려나가며 쏘나타(7053대) 뒤를 바짝 쫓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이번 달 SM6가 쏘나타 판매량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영국산 브랜드가 매섭게 성장하고 있다. 독일 3사를 위협할 판매량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일본 브랜드 판매량은 이미 앞질렀다. 마니아층을 위한 브랜드라 평가받던 미니와 랜드로버 상승세가 돋보인다.
BMW 소형차 브랜드 미니는 지난 1분기 2096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476대) 보다 42% 성장했다. 1분기 브랜드 점유율은 3.74%로 지난해(2.50%)보다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수 위 판매량을 보였던 도요타와 렉서스를 따돌렸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이보크 부분변경모델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디스커버리 스포츠 등 신차가 인기를 끌며 올해 1분기 2733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655대) 대비 65.1%나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와 신차 라인업이 다양화되며 소비자 선택폭이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엔트리급 차를 구매하는 차주들 중에서는 희소성있고 개성이 강한 차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전통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이던 브랜드와 마이너 브랜드 수요층이 서로 넘나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