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에 대한 인식 변해야

"조종사는 GO, NO GO(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자동조종장치)으로 가는데? 아주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의심스럽겠지만 대한항공 수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페이스북에 단 댓글이다. 일각에선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발단은 이렇다. 지난 13일 대한항공 부기장 김 모씨는 페이스북에 '여객기 조종사들이 비행 전에 뭘 볼까요'라며 비행 전 수행하는 절차를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한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비판에 해명하는 글이었다.

이 글에 조 회장은 “전문 용어로 잔뜩 나열했지만 99%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운항관리사가 다 브리핑해주고 운행 중 기상 변화가 있어도 오퍼레이션센터에서 분석해준다"며 댓글을 달았다. 그러고는 비행기 조종은 자동차 운전보다 쉽다며 해당 부기장이 과시가 심하다고 타박했다.

비행기 조종이 쉬운지 자동차 운전이 쉬운지 따져보는 건 중요치 않다. 문제는 항공사를 경영하고 있는 수장이 비행기 조종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은 준사고를 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4월 15일 중국상공 고도 2만7000피트에서 여객기 압력조절장치 이상으로 비상선언 후 산소마스크 사용 및 고도강하한 준사고가 있었다.

또 지난해 7월 5일에는 괌 공항에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했다가 재진입한 사고가 났다. 같은 달 23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에서 비행 중 엔진 이상으로 리야드공항으로 회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 준사고들은 대형사고로 발전하지 않았다. 고도를 강하시킨 판단이 있었고 활주로를 이탈했음에도 제자리로 돌려놓은 조종사의 실력이 있었다. 엔진 이상 신호를 받고 회항 결정을 내린 것도 조종사다.

안전한 항공사를 만들기 위해선 조종사부터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한 대학 교수는 항공 산업을 기술집약적 산업이 아닌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아주 비상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를 비상시로 만들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 비행기 조종사인 까닭이다.​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사망자 한 명 없이 불시착에 성공한 일명 '허드슨강의 기적'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하며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것을 예상하고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여객기 조종사들의 일상이다.”​

댓글이야 이미 파문을 일으키고 삭제됐지만 조종사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어떤지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 남아있다. 이는 ‘조종사를 가볍게 여기는 항공사 비행기를 어떻게 믿고 탈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도 같다. 이제 조 회장은 이 물음에 댓글을 달아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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