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계 잇걸 아이린 킴 단독 인터뷰

 

모델 아이린 킴(30)은 패션계 잇걸(it girl)이다. 성적 매력을 갖춘 스타일리시한 모델이면서도 패션 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달 24일 모델 아이린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중 하나로 선정했다.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 힙합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영화배우 김수현이 함께 영향력있는 인물에 올랐다. 특히 아이린은 아트 부문에선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처음 들었을 땐 장난인지 알았다. 팬이 트위터에 올려준 글을 보고 알게 됐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모델 아이린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앞으로 재밌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소감을 말했다.


그는 미국 화장품업체 에스티로더 컨트리뷰터(Contributor)로 활동하며 세계적 모델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70만명이 넘는다.


16일 서울 압구정 한 카페에서 아이린을 만났다. 약속 시간 30분 전, 아이린은 햇빛에 반사된 무지개색 머릿결을 흔들며 카페 안에 들어섰다. 그는 “너무 빨리 왔나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대화를 이어갔다.

포브스 선정 이후 달라진 점은.


주위에서 많이 축하해줬다. 패션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해줬다. 특히 아버지가 굉장히 기뻐했다. 아버지는 내가 모델하는 것에 굉장히 반대했다. 이번 계기로 아버지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내가 부모라도 자식이 모델 한다면 반대할 것 같다. 모델이라는 직업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체력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겉으로 보여지는 일이다 보니 혼자 감내해야 할 것도 많다.

지난 8일 파리 샤넬쇼에 참석했는데 어땠나.


파리는 언제 가든 항상 좋은 곳이다. 이번에는 전보다 두 배 이상 바빴다. 패션 쇼 참석 뿐만 아니라 컨텐츠 제작 참여, 행사, 파티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옷을 6벌정도 갈아입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재밌다. 재미가 없으면 정말 하기 힘든 일 같다. 모델 초기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운동을 병행하니 훨씬 나아졌다. 운동은 주로 필라테스를 한다.

뉴욕, 파리, 한국 패션의 차이는.


뉴욕 패션은 굉장히 빠르고 비즈니스적이다. 기성복 스타일도 많다. 현대적이며 역동적인 컬렉션으로 커리어우먼(전문직 여성) 느낌이 강하다. 반면 파리는 로맨틱하다. 뉴욕과 비교해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차분하면서 우아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에너지가 넘친다. 해외에서는 주로 쇼를 보러 가는 입장이라면 한국에서는 직접 런웨이에 오르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직접 와 닿는다. 한국은 그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다.

모델 일은 늦게 시작했다. 모델을 하게 된 계기는.


모델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 쌓은 많은 경험이 오히려 지금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 온라인 잡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 있다. 그 곳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에 굉장히 오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좋아하는 패션과 모델 쪽 일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델 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모든 일은 힘들다고 본다. 모델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 늘 좋고 행복하게 생각하려 한다.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좋은 일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 일을 통해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힘들다기보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난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런웨이에 오르면 기분이 어떤가.


처음 런웨이에 오를 땐 넘어지면 말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웃음).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무대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무대에 설 때 느끼는 희열감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백스테이지에서 한번 넘어진 적이 있다. 무릎이 왕창 까져 피가 났지만 다음 무대를 위해 옷만 갈아입고 정신없이 다시 런웨이에 섰다.

아이린하면 옴브레(ombre) 헤어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엔 집에서 끝 부분만 탈색한 뒤 파란색으로 염색했다.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었다. 염색하고 나니 다른 모델들이 내 머리 스타일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좀 더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무지개같은 옴브레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게 됐다.


사실 회사 모르게 한 염색이었다. 내 머리를 본 회사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동양계 모델은 흑발이여야 한다는 편견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색 이후 오히려 인기는 더 많아졌다. 서울컬렉션에서는 무대를 18번 서기도 했다. 하루에 무대 5개씩 오를 땐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머리는 이제 내 트레이드마크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70만명이 넘는다.


처음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땐 비즈니스가 아닌 개인 일상을 담는 공간이었다. 그저 매일 있었던 개인 일상 중 좋아하는 사진, 동영상 등을 재미로 올렸다. 당시에는 개인 블로그도 같이 운영했다.


팔로워가 늘게 된 계기는 케이블 방송 엠넷(Mnet)의 패션 프로그램 케이스타일(K style)을 진행하면서 부터다. 국내외 많은 이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케이스타일은 미국,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매우 큰 인기를 끈다. 이런 일이 운 좋게 겹치며 많은 사람에게 나를 알리게 됐다.

한국에 거주한 경험은 있나.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생활하다 고등학교 때 한국에 왔다. 당시 대전국제고등학교를 다녔다. 아시아 출신 학생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돌아온 진 5년정도 된다. 거주지를 아예 한국으로 옮겼다.

어떻게 데뷔했나.


프로젝트런웨이코리아로 방송에 데뷔했다. 스티브제이앤요니피(SteveJ&YoniP) 쇼를 통해 데뷔했다. 스티브제이앤요니피는 부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브랜드다. 너무나 좋은 분들이었다. 굉장히 좋은 기회였고 나를 많이 믿어줬다. 큰 도움을 받았다.

팬과 자주 소통하나.


직접적으론 많이 못한다. 소셜네트워크에서 한 사람에게 답하면 그 양이 너무 많아져서(웃음). ‘KCON 2015’에서 팬미팅을 가진 적 있다. 급작스럽게 갖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400~500명이 왔더라. 팬들에게 건넨 첫 질문이 ‘나 보러 온 것이 맞냐’였다. 굉장히 놀라웠다.


요즘 패션위크에 가면 과거와 달리 팬 참여도가 높다. 특히 디올쇼나 샤넬쇼에 팬들이 많다. 팬들이 나를 ‘아이린 퀸(queen)’이라고 불렀다.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정말 감사했다. 속으로 프린세스 할 나이가 지나서겠지라고 생각했다(웃음). 어린 친구들이 나를 통해 다양한 것을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아이린의 패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공작새다. 화려한 머리색과 패션 감각때문에 나를 공작새라고 많이 부른다. 한번은 공작새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 칠면조라고 말한 적 있다(웃음). 어떤 분들은 나를 유니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잇걸, 스트리트 패션 아이콘 등 독특한 수식어가 많다. 자신만의 스타일링 팁이 있다면.

 

이런 수식어가 가리키는 정형화된 모습은 없는 것 같다. 난 그냥 이것저것 많이 도전하는 사람이다. 스타일 하나만 고집하진 않는다. 상황에 맞춰 편하게 입는 편이다. 평소 라이더자켓에 청바지를 많이 입는다. 기본 아이템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잘 맞는 청바지, 라이더자켓, 코트 등을 다른 옷들과 섞어 입으면 유용하다. 기본 아이템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게 좋긴 하다.


쇼핑은 어디서 하나.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는 편이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도 많이 산다. 지금 입고 있는 이 티셔츠도 동대문에서 3만원에 색깔별로 구매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옷을 많이 사진 않는다. 협찬 받는 옷이 다수다. 다양한 곳에서 산 옷들을 믹스매치(mix-match)하는 걸 좋아한다. 많이 입어봐야지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다.


과거에는 어두운 옷을 주로 입었다. 머리는 흑발, 높은 힐, 머리는 단발, 빨간색 립스틱의 일명 센 언니였다. 지금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에스티로더 컨트리뷰터는 어떤 일을 하나.


지금같이 연결된 시대에 새로 등장한 홍보 담당이다. 제품 출시 이전과 후에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트렌드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한다. 나는 한국의 뷰티 흐름, 신제품 방향성에 대해 자유롭게 조언한다. 인플루언서, 일명 영향력 있는 개인을 활용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미국 에스티로더는 16일 새 브랜드를 출시했다. 이 브랜드의 스킨케어 제품 생산에 많이 참여했다. 굉장히 재밌고 모델로서 정말 뜻깊은 일이다.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


에스티로더와 어떻게 일하게 됐나.


미국 에스티로더 마케터가 한국을 방문한 적 있다. 한국을 구경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사동 가로수길을 거닐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잠깐 들어간 까페에서 마케터가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이야기가 있고 수개월 뒤 에스티로더 사장이 날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많이 떨렸지만 과장하지 않은 아이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왔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켈빈클라인 파티에서 사장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번에 에스티로더와 함께 일할 사람'이라며 나를 모델 켄달 제너에게 소개했다. 몇 번을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얼떨떨했지만 너무 좋았다.

해외에서 동양인으로 활동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나.


난 동양인인게 정말 자랑스럽다. 최근 해외에서 동양계 모델 인기가 굉장히 많아졌다. 동양적인 얼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 포스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동양계 모델 중 나처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패션쇼에서 가수 씨엘, 지드레곤 등 한국 유명 패션 인사를 만나면 정말 힘이 난다. 이런 흐름이 앞으로 아시아 패션 시장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으로 본다.


한국 패션 산업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세계 패션 시장에 한국 섹션이 따로 생길 정도다. 얼마 전 뉴욕의 중심에 네이쳐리퍼블릭이 개장했다. 미국에서 한국 뷰티제품이나, 케이팝(K-pop) 음악이 들리면 너무 기분 좋다. 한국 패션 시장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최근 패션 업계에서도 중국의 힘이 날로 커지는 것 같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중국 시장은 정말 커졌다. 쇼에 참석하는 패션 인사 규모도 중국이 가장 큰 것 같다. 쇼에 오르는 모델들도 변하고 있다. 한국 모델이 섰던 무대에 중국 모델이 많이 오르고 있다. 중국 시장이 매우 커졌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올해 들어 중국에서 개최하는 패션 행사에만 세 번 초대 받았다. 해외 기업들도 중국에서 패션 행사를 많이 열고 있다. 여전히 중국 패션계가 한국 패션을 좋아하고 많이 따른다는 것은 흥미롭다.


중국이 좋아하는 한국 패션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한국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한국 패션 시장이 작기 때문에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 패션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해외로 진출하는 창구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바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목표를 정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목표를 정해 놓으면 다른 좋은 기회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정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다방면으로 펼쳐나가고 싶다. 또 모델을 지망하는 어린 친구들과 서로 도우며 한국 패션계를 크게 키워나가고 싶다. 중국보다 더 크게 만들고 싶다(웃음).


개인 브랜드를 출시하는 모델이 많다. 나도 언젠가 내 브랜드를 내고 싶다. 어떤 종류든 다 해보고 싶다. 지금은 더 배워야 할 단계인 것 같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인플루언서, 모델, 컨트리뷰터 등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인플루언서 역할은 무엇인가.


영향력 있는 개인이 SNS를 기반으로 해당 브랜드의 홍보 대행사가 되는 거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무엇을 업로드하냐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 받는다.

롤모델이 있다면.


패션 쪽에선 미국 럭키매거진 편집장 출신인 에바 첸 인스타그램 패션디렉터를 존경한다. 굉장히 긍정적이며 세심한 사람이다. 굉장히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메일 하나 그냥 넘기는 법 없다. 메일을 보내면 하루 안엔 꼭 답이 온다.


영국 패션의 상징 알렉사 청도 좋아한다. 패션계에서 활동하다 모델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하다. 엠마 왓슨도 멋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패미니스트적 발언을 용감히 한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발언인데 스스럼없이 하는걸 보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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