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새로 만들고 규제 없애는 것보다 훨씬 쉽고 효과도 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개혁에 대해 언급하면 단호함을 넘어 섬뜩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는 규제 시스템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할 방침을 밝히면서 일단 모두 물에 빠트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20149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는 쓸데 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할 암덩어리라고 표현했다. 이어 2015년초 신년사에서는 연내 덩어리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서 과감하게 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최근 서비스산업 간담회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국회를 비판하며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노동개혁이 여전히 기득권과 정쟁이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한 것은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다. 박대통령은 서비스산업은 이력서 수백통을 써 내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꿈과 열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 줄 것이라면서 서비스산업은 일자리를 만드는 복덩이, 일자리덩이라고 말했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박 대통령의 표현에서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임기는 절반을 훌쩍 넘겨 이제 2년도 남지 않았는데 경제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니 초조한 마음도 들 것이다.

 

사실 경제는 악화일로다.

 

수출은 지난달까지 14개월째 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사상최장 연속감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 경제의 신화를 이룬 1등 공신이라는 찬사는 빛바랜 훈장이 된지 오래다.

 

내수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도 투자의욕을 잃고 가계는 늘어난 가계부채로 빚갚기에 허덕이다보니 지갑이 얄팍해진 탓이다. 국제경제 예측기관들은 우리나라 올 경제성장율 전망치를 계속 낮추면서 최근에는 2.7%까지 떨어트렸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는 30대 그룹 계열사들도 매출액 감소가 심각하다. 중소기업이야 오죽하겠는가. 거리에는 간판을 내리는 자영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IMF때보다 더 힘들다는 볼멘 소리가 주위에 가득하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성장기여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어느 회원국보다 낮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서비스산업이 성장에 기여할 잠재력이 크다는 뜻도 된다. 박 대통령이 서비스발전기본법 제정을 압박하고 과감한 규제개혁을 역설하는 것도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없는 법을 새로 만들고, 규제를 모두 물에 빠트려 필요한 것만 살려내는 것보다 선행돼야 할 일이 있다. 그나마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실행되도록 하는 일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의 총액확정계약을 둘러싼 논란이야말로 정부의 그런 노력이 시급한 사안이다.

 

총액확정계약은 계약체결에 앞서 발주처가 예정가격을 미리 산정해 이를 기초로 하여 낙찰자를 결정하고 계약체결시 계약금액을 사전에 확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후정산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조달청 등 정부부처의 일관된 유권해석이다.

 

특히 기재부는 한국MICE사업협동조합의 질의에 지난 2월초 보낸 답변에서 국가계약법상 공공계약은 낙찰된 총금액으로 계약을 이행하는 확정계약이 원칙이라며 확정계약으로 체결한 경우 입찰전에 사후원가검토 기준 및 절차 등을 정하지 않고 발주기관이 사후정산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명시했다. “이런 비정상적 계약관행이 개선될 수 있도록 국가 기관 및 공공기관에 지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액확정계약을 체결하며 사후원가정산을 요구하는 관행이 현장에서 여진히 사라지고 않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감사대비용등의 이유를 대며 발주처라는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사후원가정산을 압박하는 탓이다.

 

이로 인해 민간기업이 겪는 불편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필요한 서류를 만드느라 투입되는 노력과 시간, 비용도 엄청나다.

 

더 한심한 일은 만들지 않아도 되는 서류임에도 허위로 만들었다며 경찰이 수사대상에 올리는 코미디같은 일마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폐해가 크면 새누리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공공 발주기관 갑질타파를 포함시키겠다고 나서겠는가.

 

있는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일은 국회의 협조를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정부의 의지만으로 충분하다. 박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이행여부를 챙긴다면 금상첨화다. 있는 좋은 제도를 팽개쳐 놓고 규제를 풀고, 없는 제도를 만드는 일에만 골몰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국민과 기업의 모든 잠재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민간의 창의와 에너지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고 경제하려는 의지도 복돋워야 한다.

 

민간기업을 신나게 뛰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기활성화 방안이요 후유증없는 경기부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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