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 설비, 원료 수급 다변화로 변동성에 대처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 사진=현대오일뱅크

정유업계가 유가 폭락과 정제 마진 하락에 긴장하고 있다. 유가와 정제마진이 하락하면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하고 정유 업체 수익이 축소되는 까닭이다. 정유 업체들은 원료 수급 다변화, 고도화 설비 등으로 유가 급락 등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일 떨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 3월 인도분 텍사스산원유(WTI)선물 가격이 배럴당 26.21달러로 하락했다. 이는 6거래일 연속으로 떨어진 것으로 2003년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유사 수익 지표인 정제 마진(석유 제품 가격에서 운영 비용과 원자재 비용을 빼고 남은 이익)도 떨어지고 있다. 10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6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월 평균 배럴당 9.9달러보다 3.9달러나 축소됐다.

유가 급락과 정제마진 하락에 정유 업체 셈법이 복잡해졌다. 일반적으로 정유사는 원료인 원유를 전월에 사고 제품은 그 다음 달에 판다. 유가 급락 상황에서는 원유를 비싸게 사고 제품을 싸게 팔아야 하므로 수익성이 떨어진다. 더불어 원유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해 수익이 차감된다.

에쓰오일(S-OIL)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정유 부문에서는 3조45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지만 재고 평가 손실 2300억원이 더해지면서 1380억원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지난해 4분기 2500억원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정제마진 하락은 더 치명적이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저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정제마진이 견조해 버틸 힘이 있었다. 오히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5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정제마진이 배럴당 9~10달러에 유지된 영향이 컸다. 낮은 유가로 정유 업체들의 원료 비용이 줄었다. 여기에 휘발유, 경유, 납사(Naphtha) 등 제품 수요가 살아났다. 원료 비용은 줄었는데 제품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견조한 상태로 유지 됐다.

하지만 올해들어 정제마진이 축소되고 있다. 10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6달러로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3~4달러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저유가로 인한 석유 제품가 약세, 휘발유 수요 감소, 계절적인 요인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급락하면 정유 업체들은 정제 마진 축소, 재고 평가 손실 등 어려움이 있다”며 “유가 상황에 따라 원유 매입 전략을 달리할 필요가 있어 유가 향방을 주시하는 중”이라 밝혔다.

국내 정유 업체들은 고도화 설비, 원료 수급처 다변화를 통해 유가 급락 등의 불확실성에 대비 하고 있다.

고도화 설비는 원유 정제시 나오는 벙커C유 등 값 싼 중질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와 경유 등 경질제품으로 만드는 설비다. 저가 제품을 고가 제품으로 만들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고가의 경질유 대신 값싼 중질유를 대체 수입할 수 있어 제품을 생산에 유연성을 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설비 개조를 통해 36%였던 고도화율을 39.1%로 끌어올렸다. 이는 업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에쓰오일은 2018년까지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해 울산공장 부지에 잔사유 고도화 콤플랙스(RUC)와 올레핀 하류 콤플렉스(ODC)를 건립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상품성이 높은 경질 제품 비중을 기존 74%에서 77%까지 늘리고 12% 수준이었던 중질유 제품 비중을 4%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원유 수급처 다양화도 유가 변동성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에쓰오일과 미국 셰브론이 지분 50%를 보유한 GS칼텍스를 제외한 현대오일뱅크와 SK이노베이션은 원유 수급처 다양화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중동산 원유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제한을 두지 않고 구매할 계획이다. 이미 중동·아시아·호주 이외 지역의 원유 수입 비중을 지난해 2분기 12%에서 지난해 3분기 16%로 늘리면서 수입 단가를 크게 낮춘 바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원유 수급 다양화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3~4년 전부터 중동산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에콰도르, 페루 등 제 3국의 원유 샘플을 구해 별도의 테스트 후 원유들을 매입해왔다. 이 비중이 전체 도입 원유의 10%로 늘면서 현대오일뱅크는 유가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도 14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업계 전문가는 “지난해 정유업계는 저유가 상황 속에서도 고도화 설비, 원유 수급처 다양화를 통해 견조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며 “최근 정유 업계가 유가 급락, 정제 마진 축소 등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러한 전략을 통한다면 지난해와 같은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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