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하게 유리천장 뚫어낸 용장(勇將)

 

 

"잘 될까 골몰하는데 힘쓰지 말고 눈에 보이는 기회부터 부딪혀라."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2001년 역삼1동 지점장에 부임하면서 내뱉은 일갈이다. 영업점은 강남대로에서 150m는 안으로 들어와야 고객 눈에 겨우 띌 정도였다. 지점장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실적도 나빴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 되는 곳이었다.

 

권 행장은 "여성 지점장이면 많이 올라갔으니 슬슬 나가란 얘긴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기가 발동해 그만 둘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선 지점 명칭을 '역삼 중앙지점'으로 변경했다. 권 행장은 직원보다 먼저 발로 뛰었고 모든 고객에게 정성을 다했다. 얼마 후 동전만 바꿔가던 고객이 타 은행 예금을 모두 들고 찾아왔다. 부임 1년만에 영업이익 5억원이 늘었다. 

 

권선주 행장은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금융권 유리천장을 뚫고 한국 최초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권 행장은 19782월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과 동시에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했다. 금융 공부를 위해 주말출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6개월마다 금융연수원 통신연수도 들었다. 10년을 공부하니 더 이상 들을 과목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기회를 얻어나갔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벽은 생각보다 컸다. 1978년 함께 입행한 여자동기 4명 중 3명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뒀다. 권 행장은 달랐다. 그는 첫 자녀를 출산한지 한 달 만에 복직했다. 둘째 자녀는 출산 전날까지 근무하는 악바리 근성을 보였다. 그는 결혼·육아가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제약은 아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권 행장은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박 대통령이 기업은행장이 기술금융·핀테크에 앞장서 감사하다다른 분들도 이 여성 행장을 본받으라고 말한 일화로 권 행장에 대한 기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권 행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그는 올해말까지 임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출마설을 잠재웠다.

 

권 행장의 리더십은 마더십(mother+ship 합성어)으로 통한다. 그는 지점장 시절부터 모든 직원과 가족, 진로, 승진 문제를 논의해왔다. 권 행장은 권위적인 최고경영자가 아닌 소통하는 경영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에 있었던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서는 기자를 포함한 행사 참여인원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 22일에 열린 영업점장 회의에서는 모든 영업점장들에게 트레킹화를 선물했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비대면 채널 사업인 i-ONE뱅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권 행장은 i-ONE뱅크를 이용하면 60여개 영업점을 대신할 수 있다며 비대면 채널 상품판매를 영업점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홍채 인식으로 금융 거래하는 '홍채인증 자동화기기'를 시범운영 중이다. 지난달 권 행장은 을지로 본점에서 홍채 인식만으로 20만원을 인출하는 시연을 보였다. "비대면 채널 이용 확대가 은행권 생존 문제"라고 강조한 그의 의중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권 행장은 핀테크 발달로 직원, 점포수가 감소할 수도 있는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그는 SC은행, 씨티은행이 점포수를 축소해 시장 점유율이 하락한 사례를 들며 "직원을 급격히 줄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신입행원 채용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권 행장은 중소기업 자금지원도 지속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총 49조원의 중소기업대출을 지원했고 올해 대출 규모도 더 늘릴 예정이다. 권 행장은 올해 기술금융 공급 목표를 지난해 6조원에서 2조원 늘린 8조원으로 잡았다. 기술 신용대출을 정착시켜 창업·성장 기업 지원을 강화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기업은행은 정부의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따라 2011년부터 부점장급 이상 직원에 대해 성과연봉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직원의 경우 성과연봉제를 운영하진 않지만 성과 상여금, 업적 성과금 등 경영평가결과에 따른 변동성과급을 운영해 성과보상체계를 운영한다.

 

권 행장은 지난 14일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성과주의 도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권 행장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성과주의 내용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말 성과주의를 도입할 시 총파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개인의 성과를 몇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지난 1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금융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혀 권 행장의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필

 

권선주

 

1956년 전북 전주 출생이다. 경기여고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했다. 1998년에는 방이역지점장을, 2007년에는 PB사업단 부사업단장을 맡았고 2008년 외환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카드사업본부 부행장을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을 역임한 후 201324대 기업은행장이 되었다. 임기는 오는 1227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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