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된 국내 유일 자동차 업체 후계자 '불안'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황제에 비견된다. 권력을 세습했다는 점에서는 중국의 황제(皇帝)와 비슷하나 최고 통치자로서의 권한과 지배구조를 보면 로마의 임페라토르(Imperator)’에 가깝다.

 

라틴어 임페라토르란 로마의 황제를 가리킨다(본래는 개선장군을 부르는 경칭이었다). 이 칭호를 지닌 자는 종신 군통수권을 가진다. 당시 유럽 최강 전력인 로마군단의 총사령관이다. 게르만족과 맞선 라인강과 도나우강 전선이나 파르티아와 인접한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처럼 수시로 전투가 터지는 최전선에 주둔하는 최정예 군단의 사령관들을 인선한다. 원로원은 갈리아(서유럽)나 히스파니아(스페인) 지역처럼 평화로운 곳의 총독과 군단장의 인선을 맡았다.

 

정몽구 회장은 국내 유일 자동차업체 현대차그룹의 종신 통령이다. 그는 국내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11만명 현대·기아차인의 총사령관이다. 그는 자동차 분야뿐만 아니라 건설·철강·금융 등 시장 경쟁이 치열한 최전선을 지휘할 최고경영자(CEO)를 인선한다. 상대적으로 경쟁 환경이 덜 치열한 캐피탈, 물류, 광고, 레저 영역의 CEO 인선은 아들, 사위 또는 인사실 관계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로마 황제는 임페라토르 외에 또 다른 칭호를 갖는다. 제일인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프린켑스(Princeps)’이다. 프린켑스는 한니발을 무찌르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부여된 이래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지도자에게 붙여졌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의 프린켑스라는 첨언은 사족이다. 정 회장은 작은 아버지 정세영씨로부터 현대차를 탈취하고 나중에 기아차를 인수해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키워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성장 신화가 읊어질 때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 정주영과 함께 일리아드 앤 오디세이의 헥토르나 아킬레스 같은 신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할게다.

 

로마 황제는 호민관(tribunus plebis)’만이 갖는 특권을 향유했다. 호민관은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평민 중에서 선출한 관직으로서 원로원 결정에 대한 거부권과 함께 신체불가침권을 갖고 있었다. 호민관은 재임 기간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임기가 끝난 후에야 처벌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이 사장단 회의의 의사결정 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 없다. 정 회장은 감정가 5조원 이하의 서울 삼성동 소재 옛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을 주고 인수해도 그 책임을 묻는 이가 없다. 정 회장이 세금 포탈, 횡령 등 갖가지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감옥 형을 살아도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온 경우는 없다. 현대차그룹에서 그는 움직이는 치외법권(治外法權)이다.

 

정몽구 회장이 로마 황제에 비견된다고 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처럼 걸출한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섯 가지 자질인 지성·설득력·지구력·자제력·불굴의 의지를 모두 갖춘 흔치 않은 인물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력과 인내력에 통합력까지 갖춘 불세출의 지도자이다. 매력적인 외모와 지중해를 담을 수 있는 포용력까지 갖췄다. 무엇보다도 이 두 지도자는 자기 역량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아무리 정 회장의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는 없다.

 

정 회장과 비교할 수 있는 이는 티베리우스다. 티베리우스는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해 나폴리가 바라다 보이는 카프리섬에서 은둔한 채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당시 로마 황궁은 로마 한복판에 있는 팔라티노 언덕에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카프리섬에 틀어박혀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는 이는 가차 없이 처단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정 회장은 대통령 초청 자리 등 참석이 불가피한 자리를 빼고는 공식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얼마전 제네시스 G900 발표회에 참석한 것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정 회장은 새벽에 회사서 나와 서울 강남구 양재동 소재 현대차본관에 출근한다.

 

정 회장이 내뿜는 카리스마의 위력은 대단하다. 계열사 임원진에게 주는 중압감은 유교 집안의 가부장에 가깝다. 기자와 접촉한 현대차 사장들은 모두 인터뷰를 고사했다. 한 계열사 사장은 회장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일개 계열사 사장이 언론이 이름 석자를 내비치는 것은 불경죄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번은 정 회장이 계열사 임원 상당수를 이끌고 일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일행과 마주친 적이 있다. 이때 정 회장은 임원진에게 “(구 회장은) 내 친동생과 다를 바 없으니 모두 큰 절 올리지 않고 뭐하냐고 호통치는 바람에 현대차 임원진은 일식당 바닥에 엎드려 구 회장에게 큰 절을 올려야 했다. 마침 구 회장도 LG 계열사 임원진과 동행하고 있어 LG 임원들도 서둘러 큰 절을 올리는 바람에 국내 재계 2위와 5위 임원진이 맨 바닥에서 큰 절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현대·기아차가 토요다, 폴크스바겐, GM, 르노닛산에 이어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하는데 정 회장이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운이 좋아 2세는 어떻게 탁월했다고 치자. 과연 그 운이 3세까지 이어질까? 세습으로 황위에 오른 로마 황제치고 제국을 위기로 몰아가지 않은 이가 거의 없었다.

 

자기 힘이 아니라 선황이 미리 정하거나 세습으로 황위에 오른 대표 사례가 칼리굴라, 네로, 콤모두스이다. 티베리우스는 선황 아우구스투스 유지를 받들어 칼리굴라에게 황위를 물려줬으나 칼리쿨라는 제국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다 친위대 손에 죽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친자로 황위를 이어 받은 네로는 악명 높은 황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현제 이전 로마 역사에서 손에 꼽는 악제(惡帝)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자인 콤모두스 역시 로마 제국을 멸망의 길로 이끈 것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칼리굴라나 네로처럼 형편없는 지도자가 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 못지않은 최고경영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 그에게 현대차를 맡긴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그 도박의 위험이나 부담은 단지 현대차에 한정되지 않는다.

 

계열사 52개 총매출 241조원, 고용인원 25만 명 이상 거대 기업집단이 리더 한명 잘못 만나 망가지기라도 하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기아자동차 부도라는 촉매제 탓에 1998년 외환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듯이. 현대차그룹의 경영지배구조나 세습에 유달리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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