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건의 경제 하이라이트

한국은 사이비가 판치는 나라다. 2015년이 유난히 시끄러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이비(似而非)란 게 무엇인가. 국어사전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이라고 나와 있다. 사실 그 정의조차 사이비의 의미를 오롯이 전하지는 못한다.

사이비는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나는 같고도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한다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됐다. 공자는 더 나아가 사이비를 도덕의 적으로 규정했다. 맹자는 이에 대해 겉으로는 청렴결백해 보여 비난할 구석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현혹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그 사이비가 지금 나라를 흔들고 있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어지럽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서다.

 

우선 자아비판부터 하자.

언론계는 한국의 대표적 사이비 집단으로 비판받고 있다. 기자 개개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사를 자부하는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 그리고 긴 안목에서 보면 사이비가 너무 많다.

그들이 사이비인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아는 체는 하려기 때문이다. 일례로 많은 기자들이 정치꾼들이 쏟아낸 말들을 생각 없이 전달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누리꾼들이 솔깃할 대목만 발췌하는 꼼수까지 부리고 있다. 그들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줄도 모르면서 그런다. 각 부문에 그런 기자라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 정통을 자처하는 회사들조차 오십보백보다. 비온 뒤 죽순 솟아나듯 언론사가 늘어나는 것은 그래서일 게다.

 

법조계는 또 어떤가. 이 나라가 사기공화국이 됐을 정도로 사기꾼이 득실대는 게 누구 때문일까. 검찰의 통계를 보면 사기전과 30범 이상이 수두룩하고, 매년 50만 명 정도가 사기를 치다 입건된다. 피해자가 고발하지 않은 사건까지 합하면 매년 백만 건이 훨씬 넘을 것이란 게 법조계 인사들 얘기다. 그렇게 피해를 당해 가정이 무너지고, 강으로 철로로 뛰어든 이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사기사건의 절반 이상은 검찰에서 파기된다. 기소하더라도 대부분 법원에서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 덕에 사기는 직업처럼 됐다. 사기범 가운데 전과자가 30%가 넘고 9범 이상도 10%에 육박한다.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 모인 학계에서도 진짜배기 찾기가 쉽지않아 보인다. 남의 이론 짜깁기한 논문 쏟아내고, 곰팡내 푹푹 풍기는 고릿적 얘기를 금과옥조인양 읊어대는 교수들은 얼마나 많은가.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훈수 두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또 어떤가. 기초도 부족한데 노벨상 운운하며 잿밥만 탐내는 교수들, 그들 밑에 들어가겠다며 눈치와 아부의 도를 닦고 있는 무수히 많은 후보들에겐 또 무얼 기대할까.

 

월급 많기로 소문난 금융계엔 사이비 논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천정 찌른 중국 펀드나 폭락 직전의 브라질 채권 팔아먹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분석하고 제돈까지 찔러넣은 중개인은 있을까. 월급쟁이 퇴직금 떼지 않게 한다며 강제로 묶어둔 100조원 넘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바닥으로 기게 만든 이들을 전문가로 부를 수 있을까. 시중에 자금이 넘치는데도 불쌍한 서민들을 고리대금업자에게 가게 만든 이들이 금융인일까. 주식이나 채권의 기본도 모르면서 수수료 먹을 욕심에 이상한 상품을 팔아대는 이들은 또 어떤가.

 

기업인이나 대기업 임직원들은 또 어떤가. 수출 안 된다고 언론인 살살 꾀어 고환율 유도하고 그 덕에 생긴 이득을 제 능력으로 번 것인 양 호주머니에 쑤셔넣은 그들이다. 그 때문에 서민들 먹는 라면이며 자장면 값 치솟은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세계가 한 집안처럼 된 지금 시장 개척할 생각은 않고 내수 부족하다고 사람 자를 궁리부터 하는 게 타당한가.

 

공무원이며 국영기업 임직원들은 스스로 공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떤 사람 덕에 그들의 월급은 턱없이 높게 올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경기가 나쁜 해조차 은근슬쩍 자기들 월급을 올려왔다. 지금 그들의 거액연금이 문제되는 것도 그래서다. 국민을 봉이나 졸로 보는 듯한 그들을 국민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연예계조차 사이비 집단의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PD들이 일본이나 미국 프로그램 베끼더니 이젠 중국 프로그램까지 베끼기 시작했다. 조미료 설탕 왕창 넣는 음식점 대표를 국민적 스타로 만든 게 이 집단이다. 거기서 노래 잘 하는 가수들은 쫓겨나고 몸으로 한 몫 하는 친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는 벌써 오래다.

 

정치광대들 판치는 동네 얘기는 차라리 접어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지금 어디를 둘러봐도 사이비 집단 천지다. 이 나라가 답답하고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게 그래서다. 특히 2015년엔 그 사이비 집단의 망발이 더 심했던 것 같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진짜 노래 잘하는 이들이 대접받는 풍조가 조금씩 생기는 것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엔 여러 부문에서 그런 위안을 고르게 받았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이 더 진실해지고, 조금 더 나은 전문가가 되었으면 한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 배우든지, 더 나가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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