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으로 무장한 외유내강형 리더

 

2014년 5월 10일 밤 10시 50분 경.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미국 출장에 나섰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귀국과 동시에 부친이 입원한 삼성서울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한민국 GDP의 23%를 차지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 자리를 떠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에겐 늘 ‘황태자’란 호칭이 붙지만 처한 현실은 냉정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풍랑 속 삼성’의 선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스마트폰 사업은 이미 포화된 시장 속에서 고전하고 있고 그나마 잘 나가는 반도체 부문도 중국의 추격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삼성은 어느 부문 하나 쉬운 곳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를 보면 마치 부진한 사업부를 정리하고 주력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켰던 잭 웰치 전 제네럴 일렉트릭(GE)회장을 떠오르게 한다.(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2015년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삼성은 최근 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본격적으로 삼성이 집중해야할 분야를 선정했다. 전자·금융·바이오를 3대 축으로 조직슬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영지원조직은 축소시키고 현장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실용’을 중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격식을 싫어한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전용기 3대와 전용헬기 6대를 대한항공에 매각했다. 머리는 삼성 서초 사옥에 위치한 미용실에서 자른다. 회의할 때도 자신이 마실 물이나 커피는 자신이 직접 들고 온다. 이재용 부회장 출장 전 직원들이 미리 주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보는 등의 과도한 의전도 없앴다.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은 이 같은 격식 타파에서 엿볼 수 있다.

실용이라는 단어는 이재용 부회장을 꼭 닮았다. 실용의 또 다른 얼굴은 ‘냉정’이다. 직원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을 복잡 미묘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한 삼성전자 직원은 “회사 사옥에서 머리 자르는 기업 오너가 이재용 부회장 말고 누가 있겠나. 직원으로서 저런 모습은 자랑스럽다”라고 하면서도 “다만 그 실용으로 부진한 사업부에 대한 가차 없는 정리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재용의 실용을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이건희 회장이 카리스마 형 리더십의 소유자라면 이재용 부회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 스타일이다. 나서지 않고 뒤에서 미소 짓고 있지만 승부를 걸었을 땐 거침없이 일을 추진하는 무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평소 공개석상에서 이건희 회장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일을 있다. 이건희 회장과 꼭 붙어 다니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늘 떨어져 있거나 이건희 회장 뒤에서 묵묵히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후계자는 결국 그였다. 삼성 계열사의 사장을 지내고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한 인사는 후계구도 이야기가 한창이던 2013년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딸들보다 이건희 회장과 공개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계가 딸 쪽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는 별 의미가 없는 분석이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후계자가 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으며 내공을 쌓아왔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후 2013년 부회장 자리에 앉았다. 입사 후 지금의 자리까지 오는데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일반 직장인들에 비교할 순 없지만 그룹 입사 후 얼마 안 돼 임원을 달고 초고속 승진하는 재벌 3세들과 차이를 보인다.

오랜기간 내공을 쌓아온 이재용 부회장은 승부사 기질이 있다. 중요한 비즈니스 사안은 직접 만나서 해결하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질타를 받자 공개적으로 나서 사과했다. 갑자기 기자들을 마주쳐도 당황하지 않고 심지어 가벼운 농감까지 건네는 여유를 보인다. 그가 수행원들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처신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과 승부사 기질이 위기의 삼성을 구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일로 탈바꿈했고 그의 승부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이재용 부회장의 숭부수에 관심을 갖는 건 그의 승부가 사실상 대한민국 경제의 성패를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필

이재용
1968년 서울 생
199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학사
2000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2007~ 2009년 삼성전자 전무
2009~ 2010년 삼성전자 COO, 부사장
2010~ 2012년 삼성전자 COO, 사장
2013~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