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파기환송심에서도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가 A4 용지 5장 분량의 판결 요지를 모두 읽었지만 이재현 회장은 눈을 감은 채 10분간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08년 비자금 의혹과 부하 직원의 청부살인 논란이 있어도 별반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이 날 만큼은 달랐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후계자로 70년대 중반 일찌감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지목했을 때 이재현 회장의 운명은 정해졌다. 삼성가의 장손이지만 상식적으로 있어야할 후계자의 자리,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훗날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 즉 사촌들에게 밀리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재현 회장은 1983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삼성을 떠나 제대로 일어서보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당시 장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이병철 창업주가 이 사실을 알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그의 꿈은 2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1985년 당시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제일제당 경리부를 시작으로 기획관리부,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를 지낼 때까지 약 7년간 적아닌 적(?)과의 동침을 이어왔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기회는 1993년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재무팀에서 기초를 튼튼히 갈고 닦았던 그는 2003년 3월 제일제당 회장직에 올라서면서 이병철 장손다운 사업 수완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사명을 제일제당에서 CJ로 바꿨다. 식품이 주업이었던 사업도 바이오, 유통, 엔터테이먼트로 확장시켰다. 총수 일가 출신으로는 드물게 평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이재현 회장은 소통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각 사업군들을 빠르게 안착시켰다. 계열 분리 초기 2조가 안되던 매출도 30조까지 늘어났다. 재계 서열도 지난해 말 기준 1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끝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이재현 회장은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재무팀 평사원으로 시작해 얻은 재무통이란 별명이 자충수가 될지도 모르는 지경에 서있다. 그와 함께 기소된 5명의 그룹사 내부 관련자들이 모두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다른 기업들의 총수 일가와 대조되는 경우다.

이 회장은 이번 파기환송심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상고를 준비하고 있다. CJ그룹은 연말인사, 조직개편 등 만사를 제쳐두고 그간 이 회장의 공판에 집중했다. 그만큼 이재현 회장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일각에서 그의 부재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영향력 만큼이나 이 회장만큼 CJ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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