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 마지막 대목이다. 소설 속 남편은 서로 헐뜯기만 하는 기득권의 모습을 꼬집으며 사회가 권해 술을 마셨노라 했다. 야당 위기, 대기업 인사, 민중총궐기까지 정치·경제·사회를 막론하고 여전히 사회는 우리에게 술을 권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제 사회가 권하는 술을 마시는 일조차도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서민 주류로 대표되는 소주가 병당 5000원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탓이다. 하이트진로 그룹이 3년 만에 소주 출고가를 인상했다. 소주 출고가는 961.7원에서 54원 올라 1000원대를 넘어섰다. 다른 소주 업체들도 가격 인상에 동참해 3~5%씩 출고가를 올렸다.

소매점의 소주 판매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출고가 50원당 도매점 200원, 소매점 1000원의 가격 인상이 연동된다고 보고 있다. 일반 음식점에서 소주는 3000~4000원 사이에 판매되고 있다. 이제 음식점 메뉴판에서 5000원짜리 소주를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부 상권에서는 소주가격 인상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문제는 소주업체들의 가격 인상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원가상승을 근거로 들었지만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은 3년째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주정의 주원료인 곡물 가격은 하락하기도 했다. 게다가 순한 소주와 단맛 소주가 인기를 끌면서 소주에서 주정비율도 낮아졌다.

결국 올 초 담배 값 인상에 이어 서민 증세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소주가격 인상은 정부의 방침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불경기에 유독 서민이 즐기는 술값이 오른 이유가 궁금하다. 주류 소비량이 많은 시기에 소비자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정부와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소주가격 인상을 눈감아 준 것 아니냐의 의혹을 제기했다. 납세자연맹은 최근 소주 출고가 5.61% 인상으로 세금총액이 연간 928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국세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 일주일 뒤에 2015년이 지나간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으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소주 한잔’ 조차 누군가에게 쉬이 허락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다. 이 몹쓸 사회가 그렇게 술을 권하더니 그 마저도 마음껏 마시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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