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효성 부족·표리부동"

 

금융 당국이 미국 금리 인상 앞에 두고 가계부채 관리에 나섰다고 하지만 정책 의지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부채 관리 필요성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금융위는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에서 집단대출을 제외했다. 시행사가 집단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서는데다 분양시장 상황을 감안했다는 이유다.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은 중도금 집단대출이다. 지난 9월 중도금 집단대출은 4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9조1000억원 증가했다. 예년 연평균 증가액 2조~3조원의 3배를 이미 넘었다.

9월 기준 전체 집단대출은 104조6000억원으로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383조3000억원의 30% 수준이다. 또 아파트 분양물량이 급증하면서 집단대출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아파트 분양물량을 49만호로 예상했다. 이는 2000~2014년 연평균 27만호의 2배다.

 

송인호 연구위원은 "집단대출 잔액은 주택담보대출의 30%에 달한다"며 "금융위가 이번 정책에서 주택담보대출의 핵심인 집단대출을 제외해 정책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파트 분양물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도 집단대출을 중심으로 지속될 것"이라며 "중도금 집단대출은 DTI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수분양자의 상환능력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가계부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집단대출의 경우에도 아파트 분양시점에 개인신용평가 심사를 강화해 집단대출의 건전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도 "금융위는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 가이드라인에서 집단대출이라는 핵심을 빠트렸다"며 "집단대출을 예외로 둔 것은 개인 대출자보다 건설사와 분양 경기를 위한 정책이다. 향후 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압박이 된다"고 지적했다.

◇ 한은, 저금리 지속…말로만 부채관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여러번 가계부채 관리를 주문했다. 그럼에도 한은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된 이달에도 금리를 동결했다. 양적완화와 부채 증가를 통한 경기 부양 의지를 놓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1일 IMF(국제통화기금)와의 콘퍼런스에서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라 국제금융 여건이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민간 경제주체와 정책 당국은 레버리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10월 연세대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도 "민간 부채가 느는 속도를 늦추고 부채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요구된다"며 "시장금리 상승시 그동안 누적된 가계부채의 상환부담 증가로 금융부문 건전성과 경기회복이 제약될 수 있다. 정책당국은 가계부채를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가 거듭 부채관리를 주문했지만 정작 한은은 부채 증가의 근본 원인인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둔 지난 10일에도 기준금리를 기존 1.50%로 동결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기준금리를 4차례 내린 뒤 6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유지했다.

미국 연준은 15~16일 정례회의를 열고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 시장은 연준이 7년만에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석천 평론가는 "한은의 저금지 기조 유지와 이주열 총재의 부채관리 발언은 표리부동하다"며 "저금리는 가계부채의 근본 원인이다. 빚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저금리에 따른 부의 효과를 노렸으나 정작 소비는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며 "금리가 오르면 한국의 가계가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는 미미하다"며 "2008년 이후 부동산 자산 증가에 따른 소비증가 효과는 사라졌다.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원리금 상환부담이 소비를 줄이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준영 기자 lovehope@sisa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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