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부정적 인식 여전..."총수 지배 인정해야"는 의견도

 

대기업들이 최근 인사를 통해 30대인 총수일가 3~4세들을 핵심 보직 임원으로 임명하며 승계를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소수 지분을 가진 총수일가가 그룹을 '승계'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두산은 지난달 30일 공시를 통해 박서원(36) 오리콤 부사장을 두산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CSO)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두산이 새로 특허권을 따낸 면세점 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 4세인 박 전무는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 달리 자유분방한 모습과 함께 광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두산그룹 광고 계열사인 오리콤 최고광고제작책임자(CCO)로 임명되며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GS그룹도 최근 인사를 통해 4세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총수일가의 장손인 허준홍(40) GS칼텍스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다. 허창수 회장의 장남 허윤홍(36) GS건설 상무도 전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허서홍(38)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부장)도 이번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33) 현대중공업 기획총괄부문장도 최근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그는 사우디 아람코 및 인도와의 협력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할뿐 아니라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한 영업본부 총괄부문장까지 겸직한다.

지난 6일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2) 한화큐셀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이에 앞서 김 전무의 동생 김동원씨(30)는 지난 1일자로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에 임명됐다. 두 사람 모두 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는 태양광 사업과 핀테크 사업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이 대기업 총수일가의 경영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단순히 총수일가라는 이유로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창업과 성장단계에서 오너경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 후에도 오너 또는 자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해야 하는 가에 대한 당위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승진 인사를 발표하며 이들 총수일가 3, 4세들의 성과를 홍보하며 명분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학자들 사이에선 현실적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를 어느 정도 용인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총수 일가 경영권 승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외국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재벌 개혁 운동에 앞장 서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조차 지난달 30일 한 토론회에서 "단기간 내에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재벌 총수일가의 비극은 자신의 역할을 CEO로 한정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며 "3세들의 롤모델을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으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 같은 역할 변화가 자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법제도와 시장 압력을 통해 진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견에 박경서 교수와 박상용 연세대 교수도 대체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박상용 교수는 "4세, 5세, 6세로 내려가다 보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경제나 가족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이념 스펙트럼에 관계없이 공감할 것"이라면서도 총수 일가가 가진 장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전문)경영자나 근로자와 달리 창업자 가족에겐 장기적 시계가 있다. 진두지휘가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이 돌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연세대 특임교수)는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2세나 3세 경영자가 시장경쟁을 거쳐 성공한 창업자나 그와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경영인만큼 회사를 잘 경영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2세,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막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유로 "오너 자손으로 승계에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차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재벌 총수 체제의 현실적 대안으로 종업원주주회사와 공기업 형태 회사가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성과를 볼 때 대안들이 오너 3세 경영보다 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상조 교수 의견에 대해서도 "총수가 이사회 의장을 하려해도 회사를 잘 알아야 가능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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