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면합의 의혹 ... 예비비 쓸 수 있도록 예산총칙 변경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예산을 몰래 확보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노동 관계법을 소관하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조차 상당수 모르고 있어 지도부간 '이면합의'가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노동계까지 강하게 반발하면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201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 수정안'에 따르면 여야는 1조6000억원 규모 일반회계 예비비를 편성한 뒤 노동시장 구조개혁 후속조치 관련 비용으로 지출할 수 있도록 예산총칙을 수정했다.

여야는 예비비의 사용처를 규정한 예산총칙 12조에서 '노동시장과 관련된 후속조치'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예비비는 통상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복구비나 인건비, 환율 변동에 따른 보전 경비 등으로 쓰이는 돈이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노동관련 5개 법안이 처리됐다면 관련 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중인 상황"이라며 "이 법안이 통과된 후 예산 문제를 고려해 예비비로 쓸 수 있도록 넣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고용보험법은 구직급여 지급기간 연장과 상하한액 조정 등에 따라 내년에 9339억원 예산이 필요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법안 비용추계서에서 향후 5년간 5조6227억원이 소요된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노동 관계법을 소관하는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은 "해당 내용을 잘 모른다"고 밝혔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환노위에서 정부예산안을 심사할 때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관련 내용을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잘 모르겠다"며 "수 많은 사업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세부적인 사안까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결위 논의 과정에서도 여야간 충분한 협의는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여야 원내지도부가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노동관계 5법의 처리시점에 대한 이면 합의가 있었던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2일 심야협상 끝에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에 관한 논의를 즉시 시작하고, (오는 9일 끝나는) 정기국회가 아닌 별도의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진보 정당과 노동계는 벌써 반발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법안으로 처리되지 않은 사업 예산을 예비비로 숨겨놓은 것은 '꼼수'"라며 "노동관계 5법은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던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관계자는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이라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노사정위에서 합의하지 않은 사업에 쓰인다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새벽 내년 예산안과 주요 쟁점법안의 처리 방안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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