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개발 인력 축소 M&A 강화, 제품 생산은 부품위주

 

삼성이 인수·합병(M&A)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폐쇄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외부의 강점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같은 그룹 구조개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술력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데 과감하게 베팅해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자체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보유 기술을 폐쇄적으로 관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외부 기업을 인수한 뒤 해당 계열사 인력에 운영과 관리까지 맡길 정도다. 외부 개발자를 자체 생태계에 끌어들이려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 같은 삼성의 변화 원인을 두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과감한 투자가 가능할 정도로 자금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삼성이 사업하는 영역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체 연구개발 만으로 경쟁사와 대적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제조 분야에서 삼성은 소니 등 한때 세계 전자업계를 장악했던 선진국 업체의 강점을 수용하고 있다. 소비재 완성품보다 첨단 부품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게 대표적이다.

◇ 삼성은 스타트업계 큰 손, 소프트웨어 투자도 과감

에릭 슈미트 알파벳(Alphabet, 구글 지주회사) 회장은 지난달 방한해 “앞으로도 한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면서 “미래에는 삼성이나 LG가 로봇을 만들면 구글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관련 투자의 큰손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스타트업이 꼽은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인 기업' 1위는 삼성이었다. 2014년에는 구글이 1위, 삼성이 2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삼성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빅딜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8월에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 기업 스마트 싱스를 2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구글의 네스트 인수에 대응한 것이다.

스마트 싱스는 여전히 알렉스 호킨스 대표(CEO)가 경영하고 있다. 호킨스 대표는 분기마다 방한해 삼성전자와 사업계획을 협의한다.

삼성전자가 투자하는 분야는 소프트웨어나 사물인터넷 외에도 다양하다. 삼성페이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루페이를 3000억원에 인수한 것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동안 구글 같은 세계적 소프트웨어 기업이 이런 방식을 써왔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인수해 해당 기업의 기술력은 물론 인력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 자금력 풍부하고 유연한 조직 추구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3분기에 신기술 투자조합 2개를 신설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조합과 합치면 모두 9개다. 여기에 벤처 투자 목적으로 설립된 베이징 펀드도 있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이 기업이나 특허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배경엔 풍부한 자금이 있었다. 세계적 IT기업은 미국 증시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여 공격적 투자를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도 자금이 워낙 많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수년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수십조원씩 난데다 삼성 테크윈과 화학부문 등 계열사를 잇달아 매각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11조원을 들여 자사주를 매입·소각키로 한 것도 그런 자심감이 있어서다.

대신 삼성은 인원을 축소해 유연한 조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구글의 연구개발 인력은 1000명을 갓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덩치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디지털솔루션센터(DMC)를 해체하고 최근 개소한 R&D센터에 입주인력을 절반도 채우지 않았다.

◇ 소니·GE처럼, 부품·B2B 집중 투자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소니처럼 부품 제조 중심 기업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삼성전자 사업구조가 소니처럼 변하고 있다는 분석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소니는 모바일 이미지 센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때 가전시장 강자였던 소니나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는 신흥 경쟁사에 밀리면서 사업 전략을 바꿨다.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데다 가격경쟁에서도 밀렸기 때문이다. 이후 소니는 부품사업으로, GE는 의료·바이오 산업으로 눈을 돌려 성공했다.

완성품 부문에서 중국 업체의 도전이 거세지는 점도 삼성의 변화를 예상하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아예 장기인 첨단부품 쪽에 ‘올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벤 바자린(Ben Bajarin)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스(Creative Strategies)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5년 안에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 내용을 두고 “상당히 가능성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에선 애플 A9칩 생산을 위탁받아 업계 1위 TSMC를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자체 설계 엑시노스를 발열 이슈가 컸던 퀄컴 스냅드레곤 810 대신 신제품에 탑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삼성이 타 기업 의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AP칩은 퀄컴으로부터, 소프트웨어는 구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개발하는 것”이라면서 “결국 이쪽에도 이런 카드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 당장 삼성이 구글이나 퀄컴 같아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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