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놓고 한·중·일 패권 삼국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바짝 뒤쫓고,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힘을 키우고 있다. 사진은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모형을 살펴보고 있는 관람객. / 사진=뉴스1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선두인 일본 업체를 한국 기업들이 바짝 뒤쫓고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고 있다.

29일 일본 시장조사업체 테크노시스템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파나소닉이 점유율 46%로 1위를 굳게 지키고 있고 닛산과 NEC가 공동 출자한 오토모티브에너지서플라이(AESC)가 17%로 2위, LG화학이 11%로 3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판도가 변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심이던 시장이 중국과 유럽으로 옮겨가면서 일본 배터리 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판매처를 다변화 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저가 제품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중국 공략하는 LG화학·삼성SDI

LG화학과 삼성SDI가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잇따라 준공했다. 전기차 배터리 최대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시장조사기관 IHS·B3 등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 자동차 시장은 2014년 220만대에서 2020년 63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 시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3년 중국에서 총 1만9000여대의 전기차가 팔렸으며 2014년에는 전년 대비 400% 이상 늘어난 8만여대가 판매됐다.

LG화학은 중국 난징(南京)시 신강 경제개발구에 난징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은 320㎞ 이상 주행 가능한 고성능 순수 전기차 기준 5만대,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기준 18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췄다.

삼성SDI도 중국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지었다. 난징에서 1087㎞ 떨어진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까오신(高新)산업개발구에서 연간 4만대 분량의 고성능 전기자동차(순수 EV기준) 배터리를 제조한다. 시안 공장은 배터리 셀과 모듈의 전 공정을 일괄 생산할 수 있어 다양한 수요에 반응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대륙 시장 공략이 만만치 만은 않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과는 2~3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낮은 배터리 가격으로 상쇄 된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빠르게 산업을 자급화 하고 있어 향후 중국 업체들이 강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생산 업체와 소비자에게 세제 혜택과 보조금 등을 확대해 2020년까지 500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한다는 장기 목표를 세웠다.

정부 지원 아래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BYD(比亞迪·비야디)는 올해 1분기 삼성SDI를 제치고 중국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BYD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이 LG화학보다 앞선 것으로 보고 있다.

◇불안한 업계 선두 일본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일본 배터리 업체가 길목을 꽉 막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차 시장은 일본 및 일부 미국 자동차 업체가 주도해 왔다. 

업계 1위로 평가 받는 파나소닉은 미국 자동차 제조사 테슬라와 포드에 배터리를 납품하며 성장했다. 이들 회사 납품 배터리는 파나소닉 매출 절반을 차지한다. 닛산과 NEC가 공동 출자한 오토모티브에너지서플라이(AESC)는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의 전기차 리프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키웠다. 리프는 2015년 1월 기준 누적판매량 15만대를 돌파,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 기록을 세웠다.

일본 업체의 아성을 국내 기업이 위협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LG화학이 지난 27일 테슬라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을 위한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며 테슬라가 본격적인 전기차 증산을 계기로 파나소닉의 독점 납품 체제를 수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는 이 계약이 다수 물량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 시장 지각 변동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계약이라고 보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미국·일본 중심에서 유럽과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도 국내 기업들에게는 호재다. BMW를 비롯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을 늘리고 있고, 폴크스바겐은 디젤 스캔들 이후 전기차 위주로 사업 전략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올해 2분기 대체연료차량 신차 등록 대수가 지난해 대비 17.8%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LG화학과 삼성SDI의 주요 고객은 BMW를 비롯해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축이다. 삼성SDI는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로부터 총 30여건 이상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했는데 이 가운데 유럽 지역 완성차 업체와의 계약이 50%를 넘는다. LG화학도 폴크스바겐·르노·볼보·아우디·다임러그룹 등 유럽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리서치 업계 전문가는 “배터리 업계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는 일본 업체들은 판매처가 자국 완성차 회사에 치우쳐 있다”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질수록  판매처가 다양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성장이 두드러 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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