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여느 회의와 마찬가지로 여야 의원 사이 공방으로 시작됐다. 야당 의원들은 최근 개각으로 물러나게 될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을 놓고 총선 출마용 퇴진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여야 대치는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내년도 살림살이를 살펴볼 예산안 심사가 시작되자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지역구 예산을 늘려달라고 했다. 어떤 의원은 다른 의원이 요청한 사업 예산까지 확보하려는 ‘우애’를 보이기도 했다. 유일호 장관조차 벌써 의원 신분으로 돌아온 것처럼 “적극 추진하겠다”, “저희(국토부)도 필요한 사업이라 생각된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국토위 예비심사에서 여야가 늘린 지역 사업만 240여개, 2조470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 도로 신설이나 복선전철 건설에 쓰겠다는 돈이다. 정부가 올해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며 줄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축분 1조5000억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역구 의원들의 ‘예산 끼워넣기’는 해마다 반복됐다. 올해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더 심해지는 모양새다. 총선을 앞둔 의원들에게 지역구 예산은 ‘생명 연장선’과 같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표심이 움직인다. 연말에 ‘예산 장사’를 잘한 의원들은 지역구 주민들의 지지를 확보한 셈이다.

문제는 돈이다. 나라 살림이 넉넉하지 않다. 경제가 어렵다며 돈을 풀다보니 매년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나랏빚은 10년 사이 2.3배로 늘었다. 국가 채무는 2016년 600조원, 2017년 700조원을 돌파할 전망까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돈 먹는 하마’로 알려진 SOC 예산을 마구잡이로 늘리고 있다.

특히 의원들이 집중적으로 늘린 SOC 예산은 경제 효과도 예전과 같지 않다. 댐을 건설해 공황을 극복한 ‘뉴딜 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건설업의 고용유발지수가 낮아지면서 더 이상 새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규모 예산을 들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해 혈세만 쏟게 되는 경우도 있다. 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묻지마식 SOC 사업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역구 주민 입장에서 동네를 발전시킬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게는 지역구를 챙기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나라 전체는 생각하지 않고 지역구 예산만 확보했다고 홍보하는 의원들에게 박수를 칠 수 있을까.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 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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