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발 반도체 M&A 바람에 흔들리는 국내 중소업체들

출처: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와 시사점'(이승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상무)

지난 15일 미국 플래시메모리업체 샌디스크의 주가가 치솟았다. 인수합병(M&A) 매물로 시장에 나오면서 웨스턴디지털이 매입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15%을 사들인 날로부터 불과 2주 후 벌어진 일이다.

같은 날 한국 킨텍스에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주최로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선 중국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국내 반도체 분야 중 메모리만 잘나가는 이유는 그 분야만 중국이 아직 안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며 “우스갯소리지만 새겨들을만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주최로 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반도체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에서는 M&A를 통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진출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 및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시장이 주요 타겟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각을 표하고 있다. 자칫 국내 팹리스(Fabless: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설계와 개발만 하고 생산은 설비가 없어 외부 제조사에서 맡기는 기업)들도 대거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2005년부터 2010년 간 11차 5개년 계획을 통해 반도체 매출 목표를 460억 달러로 잡았지만 실제 수익은 220억 달러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는 이후 반도체 개발 전략을 바꿨다. 프로젝트를 늘리기보단 적극적 M&A를 유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중국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반도체 회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메모리 위주로 진행하다 점차 메모리 영역까지 그 폭을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칭화그룹’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상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3년 스프레드트롬을 17억800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RDA 마이크로(9억7000만 달러), 마이크론(230억 달러), 웨스턴디지털(지분 15%획득) 등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국내 반도체 팹리스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팹리스는 쉽게 말해 반도체를 설계하고 개발을 할 뿐 제조시설은 없는 곳들이다. 삼성전자, 동부하이텍 등 ‘파운드리’사에게 제조를 맡겨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제조사가 모든 설계를 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팹리스 사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파운드리가 제조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한다.

전 세계 물량 60%를 소화하는 대만 파운드리 업계의 경우 다양한 설계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우리나라 파운드리의 경우엔 소화할 수 있는 설계가 많지 않다. 국내 팹리스사들이 자신들의 설계를 받아주는 파운드리를 찾아 대만으로 가다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팹리스 사 대표이사는 “대만 파운드리처럼 삼성전자나 동부하이텍이 국내 팹리스 사들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인수하려고 한다면 국내 많은 팹리스 사가 주저 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중희 인천대학교 교수는 “삼성전자나 동부하이텍의 선택을 받지 못한 곳들을 중국이 인수해가면 결국 그 효과는 국내 대기업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현재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내 인재와 회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국내 한 원전 업체도 중국 정부가 거액을 주고 인수하려 한 사례도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인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술력 있는 팹리스 사를 중국이 대거 사들일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에 참석한 이승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중국 반도체 소비액 2100억 달러 중 자급자족 규모는 240억 달러로 1850억 달러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라며 “중국 원유수입(1300억 달러)보다 많은 돈을 소비해야 하는데 당연히 적극적 M&A를 시도할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M&A에 나선 만큼 우리가 고민해야할 화두는 팹리스 사들과 제조사 서로가 협조하는 팀워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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