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인 A씨는 지난달 13일 신용도 낮은 회사가 신용도 높은 회사에 지급보증을 제공해 피해를 봤다며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에게 직접 이메일 진정서를 냈다. 금감원에 3년 동안 민원을 넣었으나 진척이 없어서다.

지난달 18일 A씨는 금감원으로부터 민원이 접수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사흘 뒤에는 담당자가 지정됐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담당자가 변경됐다는 문자가 왔다. 담당자는 사흘 뒤 또 변경됐다. 담당부서조차 바뀌었다.

A씨는 지난달 30일 재차 의견서를 보냈다. 이번에는 담당부서 건의까지 추가했다. 최종 변경된 담당부서는 A씨가 법적 상담 때 예상했던 부서와 달랐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해결하려던 A씨는 되레 일이 늘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돼버렸다.

금감원은 금융 검찰이라고 불린다.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이 금감원에 가장 많이 쏟아내는 말 중 하나가 ‘철저히 조사하라’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그 금감원 앞에는 금융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각종 플래카드가 끊이지 않고 걸린다. 이따금 시위도 벌어진다. 1층 민원실 앞에 마련된 전화기를 붙잡고 금감원 직원에게 큰 목소리로 항의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A씨도 그랬다. 플래카드를 걸어봤고, 1인 시위도 벌였다. 또 전화기를 붙잡고 금감원 직원과 실랑이도 벌였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지났다.

지금 A씨는 아주 태연하다. 금감원 앞에서 시위하고 언성 높이는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그 침착함의 비결을 물으니 “예상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A씨는 금감원 민원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허무한 조사 결과는 그렇다치더라도 자꾸 담당자가 바뀌는 행태가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부서로 A씨의 민원을 옮긴 금감원 담당자는 이에 대해 “접수된 민원을 살펴봤더니 다른 부서가 담당하는 게 옳기 때문에 부서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민원을 접수해 처음 담당부서를 지정한 금감원 담당자는 “금감원 민원 분류 기준에 따라 배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금감원 직원끼리 의견이 엇갈린 꼴이다.

금감원에 제기된 민원은 금감원 소비자보호총괄국으로 모인다. 그 후 총괄국 내 원스톱(one stop) 서비스 팀에서 민원 관련 부서로 배정한다. 여기서 금감원이 정한 민원 분류 기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금감원이 정한 분류 기준에 따라 배정된 민원은 금감원 자체 판단으로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른다는 점이다. 민원 조사가 정확히 이뤄졌는지를 떠나 시간이 너무 지체 된다는 것. 그새 민원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있다.

A씨가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 3년 동안 금감원장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한 사람은 경남기업 대출과 워크아웃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전 금감원 부원장보 2명도 같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A씨는 “금감원에서 답변이 오질 않아 오죽 답답했으면 금감원장에게 직접 진정서를 보냈겠냐”며 “그런데 금감원장 교체가 잦고 여러 의혹을 받으니 누굴 믿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금감원에서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원 처리 중. 약 1개월 소요’

A씨는 나지막이 한 마디 내뱉었다.

“민원이 접수되는 시간이 처리되는 시간보다 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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