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저지른 부도덕한 대형 사고 뒤엔 형편 없는 지배구조가 있다

기업이 저지른 부도덕한 대형 사고 뒤엔 형편없는 지배구조가 자리한다.

폴크스바겐 사태는 이 금언(金言)의 유효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존 플렌더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리스트는 9월30일자 인사이트 칼럼에서 ‘폴크스바겐의 미숙한 지배구조 탓에 불미스러운 대형 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폴크스바겐은 형편없는 경영지배구조로 악명 높다.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 포르쉐오토모빌홀딩를 통해 폴크스바겐을 지배하며 상장사라기보다 개인 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

독일 기관투자자들은 세계 자동차 1위 업체 폴크스바겐의 지분을 2.1%(지난해말 기준)만 보유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가 폴크스바겐 지분 26.3%를 갖고 있다. 독일 기관투자자들은 지배구조가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하면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라도 투자를 꺼린다.

폴크스바겐의 지주회사는 오너 일가 소유의 포르세오토모빌홀딩이다.  이 회사는 폴크스바겐 지분 31.5%를 가지고 있으나 과반수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 지배구조를 만든 이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폴크스바겐그룹 회장(78)이다. 피에히 전 회장은 지난 4월 물러날 때까지 12년 넘게 그룹 회장과 감독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상장사 폴크스바겐을 오너 일가의 사유물처럼 이끌었다.

피에히 의장은 폴크스바겐 비틀(딱정벌레차)을 만든 페르디나트 포르쉐의 손자로 폴크스바겐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피에히 전 회장은 지난 4월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를 쫓아내고 장기 집권을 꾀하다 이사회 반발로 실패했다.

폴크스바겐은 지금 피에히 전 회장 등 오너 일가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지배구조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번 사태로 폴크스바겐이 물어야할 손해배상액은 최대 16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폴크스바겐그룹이 구축한 소비자 신뢰가 무너져 회사의 지속가능성마저 의심스러운 지경에 처했다.

오랫동안 자동차 업계를 출입한 필자로선 폴크스바겐 사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다.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대기업집단이 폴크스바겐보다 나은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탓이다. 특히 피에히 전 회장의 행태를 보자면 재벌 총수들의 전횡이 떠오른다.

국내 재벌 총수는 지주회사나 주력 계열사 지분 10% 이하를 보유하고 있으나 황제처럼 군림하며 계열사 전체를 개인 기업처럼 운영한다. 순환출자구조라는 기형적인 지분 구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총수가 마음 먹으면 안되는게 없는 게 국내 재벌의 현실이다. 현대차그룹은 공시지가 4조원에 불과한 땅을 10조원 주고 샀다가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나라 위해 사는 땅이라 마음이 편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이 나라에 기부하려면 개인 재산으로 해야 한다. 상장사 내부 유보금은 정 회장이 국가를 위해 쓸 돈이 아니다.

과연 재벌의 지배구조가 폴크스바겐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나. 앞으로 재벌 계열사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의 PBR(주가순자산배율)이 동종 업계 평균과 비교해 형편없이 낮은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