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건의 경제 하이라이트

한국 금융시장은 요지경이다. 세상이 뒤집혀도 이렇게 막가는 곳은 없을 것 같다. 고객 예탁금이 20조원이 넘는데도 주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추락하고 있다. 고객 예탁금이란 게 무엇인가. 주가가 떨어지면 사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자금이 아닌가. 그 돈이 이토록 많은데 주가는 떨어지니 무슨 까닭일까.

한 마디로 입만 열면 개인들은 무식하고, 무능하다고 떠벌여대는 기관 투자가들이 팔아대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주가를 받칠 때 조금씩 사던 그들은 외국인이 떠날 기미를 보이자 주식 내던지기에 바쁘다. 개인들이 허리가 휠 정도로 받아주고 있는데도 주가가 속락하는 건 그래서다.

그게 시장의 이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단정하기엔 떨떠름한 게 있다. 기관들의 능력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1400조원(코스피 1268조원, 코스닥 199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주식형 펀드 잔액은 고작 73조원 수준이다. 금융위기가 진행되던 2008년에 140조원이 넘던 펀드 자산이 절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금융상품 가운데 초단기로 꼽히는 머니마켓펀드(MMF) 잔고는 지난 2월 100조원이 넘었는데 18일엔 121조원으로 늘었다. 그것도 최근 줄어든 게 그 정도다. 또 다른 단기금융상품으로 어음관리계좌(CMA)란 게 있다. 대부분 단기채권이나 기업어음을 담고 있는데 이게 50조원이 넘는다.

대한민국엔 지금 엄청난 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은행 단기 예금은 아예 따지지도 않은 게 이 정도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까. 한 마디로 시장의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엔 금융 전문가가 거의 없다. 금융에 대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고사하고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보니 일반 투자자들은 돈이 있어도 굴리기가 어렵다. 공모펀드는 수시로 손실을 내고 헤지펀드도 뚜렷한 게 없기 때문이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1.5%선에 불과한 데도 단기상품 사이에서 헤매는 게 그래서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부터 꼬인 것일까.

20년 장기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공적연금인 GPIF는 지난 해 국채를 비롯한 채권투자 비중을 확 줄이고 주식 비중을 대폭 높이기로 결정했다. GPIF는 지난해 12%가 넘는 고수익을 냈다. 대조적으로 아직도 채권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 국민연금은 5.2% 수익률에 머물렀다.

국민연금이 그러고 있는 것은 국내에 주식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다. 증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주식을 투기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최근 한국 증시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아모레퍼시픽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종목 주가는 7월 이후 27% 정도 빠졌다. 중국 악재가 많이 터졌다고 하지만 사실 주가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그간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중소형주도 아니고 대형주의 PER가 50배가 훨씬 넘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대부분이 이 회사에 대해 매수 추천을 해댔다. 관련 업종 회사들이 그 바람에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것도 그래서다. 그 이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종목들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사업을 정리하고 팔아버리면 오히려 남는 게 많을 회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주식을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미인투표 같다는 얘기로 얼버무리려 한다. 그러면서 그 이면의 문제는 아예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힘들고,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 게 그래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을 바탕으로 한다. 증시가 제대로 서야 자본주의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자본주의를 천명하고도 증시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다. 주식을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니 시장에 전문가가 없고 더 나아가 금융에 대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성장하지 못했다. 3708억 달러나 되는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환율을 조금 변경했다고 국민들이 외환위기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 세계는 산업전쟁을 넘어 금융전쟁의 시대로 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 전쟁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금융을 이끌려면 시장을 제대로 배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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