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효율성 문제제기돼···다른방법으로 대체 가능
EU등 실험 줄이는 방향 연구, 대체 시험법 개발
"해당 안 영향 제한적, 신약 개발 접근 방식 확대에 의의"

동물실험 관련 이미지./사진=셔터스톡

[시사저널e=김지원 기자]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를 받기 위해 꼭 필요했던 비임상시험 중 ‘동물실험’이 다른 방식으로 대체 가능해졌다.

1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물실험 의무화 조항을 삭제한 식품의약품화장품법 관련 개정안에 서명했다. 기존 법안의 ‘잠재적 약물의 안전성과 효능을 동물실험을 통해 검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삭제되고, ‘FDA는 동물실험 또는 비동물 실험을 거친 약물이나 생물학적 물질(항체와 같은 더 큰 분자)의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증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정안 통과로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 확인을 위한 동물실험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됐다. FDA는 신약 승인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생쥐와 같은 설치류 한 종과 원숭이 같은 비설치류 한 종에 대한 독성시험을 요구해왔다. 개정법에는 동물실험 외에도 비임상시험에 쓸 수 있는 시험방법인 ▲조직 칩 및 미세생리시스템 ▲컴퓨터 모델링 ▲기타 바이오프린팅과 같은 비인체, 인체 생물학 기반 등이 제시됐다. 공중보건법(Public health Service Act)을 개정해 바이오시밀러(생물학적제제 복제약) 승인 신청 시 필요한 독성 평가 규정도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랜드 폴, 코리 부커 미 상원의원이 “동물 연구는 비효율적이며,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관련 법안을 내놓았고, 같은 해 9월 동물실험 의무화 조항을 삭제하는 안이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하며 12월 해당 안이 개정됐다. 동물실험의 한계와 윤리적 문제에 더해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기 때문이다. 

동물실험과 관련해서 생명 보호와 효율성 문제는 지속해서 등장해왔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1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실험 때문에 희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실험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동물과 인간의 대사 작용이 일부 다르기에 동물실험을 통과해도 안전성이 떨어지거나 인체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개의 몸에는 초콜릿이 치명적이지만, 인간의 신체에는 안전하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실제 FDA는 최근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약물 중 92%가 인체 대상의 임상 실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히며 동물실험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동물실험을 줄여나가고자 하는 것은 전 세계적 추세다. 네덜란드는 2003년 연구용 영장류 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EU는 화장품 관련 동물실험 금지 규제 법안을 제정했고, 의약품 개발에 대한 동물실험 금지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독성 및 안전성 평가기술을 개발하는 ‘독성위험 프로젝트’를 2016년부터 6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동물실험을 대신할 대체 시험법 개발도 더욱 활발해졌다. 줄기세포 등으로 작은 장기(오가노이드, Organoid)를 만드는 법이 연구 중이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키워 사람의 장기 구조와 같은 조직을 구현한 3D 세포 클러스터다. 약물의 독성 효과를 신속하게 식별해주는 디지털 인공신경망, 인체의 장기 수준까지 세포를 배양한 고분자 칩인 인간 장기 칩(organ-on-a-chip) 기술 등도 떠올랐다. 

인간장기 칩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한 시도는 2010년대 이후 시작돼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에뮬레이트 바이오 (Emulate Bio), 헤스페로스(Hesperos) 등 10여 개의 기업이 등장했다. 해당 기업은 특정 장기 또는 질병을 표적으로 하는 장기 팁 시스템 판매, 스크리닝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머크, 노바티스사와 같은 대형 제약사와 공동으로 연구 또는 제품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메디팹이 동물실험 대체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동물실험 대체를 위한 3D 골다공증 모델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 구축 등에 나서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인간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신약후보물질 등을 평가하는 연구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실험에 쓰이는 동물 수는 2012년 183만 4285마리에서 2016년 287만 8907마리를 기록하는 등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물실험을 다른 방식으로 곧바로 대체하기란 어렵다는 전망이 다수다. ​빌 뉴먼 ‘의료 진보를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Medical Progress)’ 소통팀장은 “FDA는 여전히 동물 실험을 요구할 수 있는 엄청난 재량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당분간은 그 방침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법에 동물실험 금지에 대한 강제성이 없다는 점, FDA의 독성학자 다수가 동물실험을 선호한다는 점도 단기간 내 변화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한국실험동물협회 관계자는 “인체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동물실험) 대체 방법 하나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라며 동물실험의 필요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은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자’, ‘대체 의학을 찾는 노력 지속하자’ 등 선언적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바로 대체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임상1상 진행을 위한 기반으로써 비임상 데이터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동물실험 대체 관련 기술 개발 기업 역시 비슷한 전망을 했다. 해밀턴 에뮬레이트사 대표는 “인간장기 칩이 동물실험을 전적으로 대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현재 간 관련 칩을 심장 등 다른 장기에 적용했을 때, 예측할 수 없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메디팹 관계자 역시 “아직 실용화 단계가 아니다”라며 “장차 동물실험의 대체 방향으로 가게 될 미래를 보고, 2~3년 후에 제품화하려고 준비 중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종의 전환점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현 기술 수준으로 동물실험을 바로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론이 등장하는 등 시장이 확대하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FDA는 이전부터 동물실험이 아니더라도 과학적이고 간접적 방법만으로 안전성 등이 소명이 된다면 (허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면서 “신약 개발 접근방식의 확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범퍼스 FDA 수석 과학자는 “FDA는 동물실험 대체 방법을 연구하는 개발자들이 그들 연구를 제출하도록 장려 중”이라며 “FDA는 동물실험을 대체하고 줄이며 개선하는 방법 개발을 위해 올해 5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동물실험만 가능하다고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라며 “(검증할 수 있는)다른 충분한 방법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동물실험이 아닌 다른 방법의 타당성, 효과성 등의 입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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