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재건축추진위원회 운영 실태 점검
GTX 반대 집회 공금 사용 의혹 조사
시위에 수백명 동원···인근 주민 피해 극심
원희룡 “국가사업에 허위·방해·선동 절대 용납 못 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우회를 요구하며 무분별한 집단행동에 나서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도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에 대한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등 칼을 빼들었다. 일각에선 재건축을 취소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이제 막 재건축 물꼬를 튼 은마아파트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모양새다.

◇추진위원회, 우회안 요구하며 주택가서 수백명 강경 시위···이태원 참사 이용해 뭇매도

2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내달 7일부터 16일까지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입주자회의에 대한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등 행정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강남구청, 변호사·회계사, 한국부동산원과 합동점검반을 구성했다. 앞서 은마아파트는 최근 추진위원회 등이 반대 집회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에 장기수선충담금 등 공급을 부당 사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140억원대 수준이던 은마아파트의 장기수선충당금이 최근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위법사항이 적발된 경우 수사의뢰, 시정명령, 환수조치 등의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다.

국토부가 칼을 빼든 건 추진위원회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추진위원회는 GTX-C노선 우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사업 주체가 아닌 기업 총수가 사는 주거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GTX-C노선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는 국토교통부와 현대건설이다. 직접 상관이 없는 정 회장 자택 앞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확성기를 이용해 구호를 외치는 등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시위에 참가하는 인원은 많게는 300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버스를 동원해 주민들을 정 회장 자택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남동 주민 불만이 폭증하자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불편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사과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추진위원회는 지난달 초 아파트 외벽에 이태원 10·29 참사를 이용해 ‘이태원 참사 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희생자를 이용한 잇속 챙기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지역사회의 비판이 쏟아지자 현수막을 건지 2시간 만에 철거했다.

◇“이미 검증 받은 안전한 공법인데”···‘님비현상’ 지적도

GTX-C노선은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를 끼고 직각으로 꺾이는 형태로 계획됐다. 은마아파트 지하 40~50m를 관통하게 된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물론 건설업계에선 지하 깊은 곳에서 이뤄지고 굴착하는 방법이 재래식 화약 발파가 아닌 기계식 공법이라 진동이 적어 충분히 안전한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국토부 역시 발파가 아닌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을 적용해 안전상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TBM은 회전 커터에 의해 터널 전단면을 절삭 또는 파쇄해 굴착하는 기계로, 진동과 소음을 저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23일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 참석한 원희룡 장관. /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추진위원회의 행동이 전형적인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GTX 공사는 검증받은 안전한 공법으로 진행되는 데도 불구하고 우회 노선안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미 다른 GTX 시공 현장들에서 주거지를 통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GTX-A노선과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20개 구간이 주거지를 통과했고 이미 철도가 지나는 구간에 재건축 사업이 이뤄진 곳도 12곳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주민들을 상대로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GTX-C노선 관련 은마아파트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간담회에서 “GTX-C 관련 모든 안전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책임을 지겠다”며 “특히 은마아파트 구간의 공법은 기존 GTX-A·한강 터널 등 도심 한가운데를 이미 지나가며 안전성이 검증된 공법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추진위원회가 우회안 고집을 꺾지 않고 실력 행사에 나서자 결국 국토부도 서울시와 함께 은마아파트 합동 점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현재 국토부와 현대건설은 “더는 우회안이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행정조사 이후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한 사법조치 진행 여부도 주목된다. 앞서 원 장관은 “교통난 해소를 위한 국가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업무방해로 인정되면 형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업계에선 추진위원회의 무리한 요구가 이제 막 물꼬를 튼 재건축 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4424가구 대단지로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올해로 19년째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19일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서울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정비계획안은 용적률·건폐율·가구수·임대주택 비율 등 재건축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GTX 문제가 정부나 시공사의 업무방해죄 고소 등으로 이어질 경우 사업 지연은 물론 불필요한 비용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아울러 갈등으로 인해 앞으로 진행될 재건축 관련 인허가 절차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