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건축 방식 대비 공기 50% 단축···자투리땅에도 공급
5년 내 270만호 계획에 새로운 공급 수단으로 떠올라
“일본·미국·유럽 등 선진국선 이미 대중화···국내는 초기 단계”
국토부, 모듈러 활성화 위해 인센티브 완화···‘컨테이너’ 인식은 숙제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윤석열 정부가 270만호 주택 공급 계획을 밝힌 가운데 속도가 강점인 ‘모듈러 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모듈러 주택은 자재와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고 현장에서 레고 블록을 맞추는 조립식 건물이다. 공사기간이 기존 공법의 절반에 불과해 입주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데다 규모가 작은 자투리땅에도 건설이 가능해 주택 공급 대안으로 떠올랐다. 

◇정부 270만호 공급 계획 발표···단기 성과 위해 ‘모듈러 주택’ 활용할 듯 

16일 정부는 5년간 전국 270만호 주택 공급 계획 등이 담긴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발표하는 첫 주택 공급 대책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서울 50만호 등 수도권에 158만호, 지방 112만호 등 총 270만호의 주택(인허가 기준)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경우 최근 5년(2018~2022년) 공급계획(129만호)과 비교해 29만호 늘어난 물량이다.

이번 대책엔 모듈러 주택 활성화 방안도 포함됐다. 임기 5년 안에 계획된 물량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속도전’이 불가피해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집값 안정 등을 위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예고해 왔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직접 철근을 잇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기존 방식으론 단기간 내 주요 도심에 대규모 주택 물량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기존 건축 방식보다 공사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모듈러 주택이 새로운 주택 공급 수단으로 거론돼 왔다.

사진은 GS건설이 모듈러 공법을 적용 중인 공사현장에서 공장을 통해 만들어진 콘크리트 벽체를 이동시키는 모습 / 사진=GS건설
GS건설이 모듈러 공법을 적용 중인 공사현장에서 공장을 통해 만들어진 콘크리트 벽체를 이동시키는 모습 / 사진=GS건설

모듈러 주택은 최신 주택 건설 기술로 공장에서 문·벽·창틀 등으로 구성된 건물 모듈 70~80%를 미리 만들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물이다. 레고처럼 모듈을 쌓거나 조립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 공법 대비 50% 이상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인건비 상승, 인력난 등에서 자유롭다.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폐기물 등도 절감해 친환경 공법으로도 손꼽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모듈러 주택을 통해 공사기간은 물론 입주 기간을 크게 단축하고, 도시 곳곳의 자투리 토지에도 공급할 수 있다”며 “각 자재가 공장에서 제작되는 만큼 인건비가 절감돼 공사비용도 기존 방식보다 30~40%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소음·분진 민원 문제에서 자유롭고 건물 해체 시 구조체를 재사용할 수 있어 폐기물이 덜 나와 친환경적이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선 연간 15만 가구 공급···싱가포르에선 40층 아파트도 ‘뚝딱’

해외에선 이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듈러 주택이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매년 약 15만 가구(전체 주택 공급의 15% 차지)가 모듈로 주택으로 지어진다. 미국에선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1000만 가구가 모듈러 주택에 거주 중이다.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초고층 빌딩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에선 콘크리트 기반의 모듈러 공법으로 40층 짜리 아파트를 지었고, 유럽·미국은 각각 49층·55층 모듈러 건물을 계획 중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모듈러 건설을 전략과제로 설정하고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초기 단계다. 모듈러 주택은 그동안 공공기관 중심으로 공급돼 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7년 서울 가양동에서 모듈러 주택을 처음으로 선보인 이후 공급 물량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는 국내 첫 대규모 모듈러 주택인 ‘신내4 콤팩트시티’ 발주를 앞두고 있다. 신내4 콤팩트시티는 서울 북부간선도로 상부에 만드는 인공대지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990가구 중 500가구가 모듈러 주택으로 공급된다. 최고 15층 높이에 단일 사업 중 최대 규모다. 

◇국토부, 모듈러 주택 인센티브 추진···“공급 확대 위해선 ‘컨테이너’ 인식 해소해야”  

국토부는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위해 인센티브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20일 발표한 ‘스마트 건설 활성화 방안’을 통해 주택법 개정을 추진해 모듈러 주택 사업의 용적률·건폐율, 높이 제한 등을 완화해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공입찰 과정에서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면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국토부는 당장 내년부터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공공주택 발주를 1000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2020~2022년 내 한 해 평균이 464가구에 불과한 것에 견줘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아울러 인센티브를 통해 향후 20층 이상으로 지을 수 있도록 기술을 고도화하기로 했다.

신내4 콤팩트시티 조감도 / 사진=SH
신내4 콤팩트시티 조감도 / 사진=SH

정부의 계획에 맞춰 대형 건설사들도 모듈러 주택 사업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GS건설은 허윤홍 GS건설 신사업부문 사장을 필두로 모듈러 주택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2020년 글로벌 모듈러 업체 폴란드의 ‘단우드’와 영국의 ‘엘리먼츠 유럽’을 인수해 자회사로 품었다. DL이앤씨는 지난해 LH가 발주한 전남 구례, 부여 동남에 176가구 규모 모듈러주택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 엔지니어링 기업인 RSI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모듈러 주택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에선 경기 일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내 모듈러 공법이 적용된 ‘스마트건설지원센터 2센터’를 지난달 완공했다. 이 밖에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도 모듈러 주택 공법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공급량을 늘리기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컨테이너라는 부정적 인식도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에선 모듈러 주택 사업이 임대주택 위주로 공급돼 왔고 준공 실적도 적은 편이다”며 “인센티브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시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잘 된 시범 케이스’를 만들어서 시장에서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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