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유재철 기자] 20세기 초반을 물리학, 후반을 정보기술의 시대로 정의한다면 21세기는 바야흐로 생명공학의 시대다. 생명공학의 중심 DNA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RNA(리보핵산)는 낯설다. 인간 게놈프로젝트 이후 DNA가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반면, RNA는 그 역할에 비해 여전히 존재감이 미미하다. 게놈프로젝트 당시 RNA는 세포핵 안의 DNA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수행원 정도로만 여겨졌다. RNA는 mRNA(메신저 리보핵산) 코로나19 백신으로 이제 일반인 입에도 종종 오르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역할의 중요성만큼 기능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RNA에 대해 알아본다.-기자 주-

오늘날 RNA을 활용한 생명공학이 발전하기까지 많은 과학자들의 집념의 연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1986년 하버드 재학생 제니퍼 다우드나와 지도교수 잭 쇼스택의 만남이 주목을 받는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DNA 연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잭 쇼스택은 RNA가 생명의 기원을 밝힐 열쇠라고 생각했다.

월터 아이작슨의 저서 <코드 브레이커>에 따르면, 생명공학계는 30억 달러를 들인 인간 게놈프로젝트로 DNA 지도를 확보했지만, 테이-삭스병, 경상적혈구 빈혈증 등 단일 유전자가 관여하는 간단한 형태의 유전 질환 치료법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밝혀낸 DNA의 염기 서열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DNA의 전령 RNA였다.

쇼스택 랩에 합류한 다우드나의 집념은 RNA를 대스타로 만들었다. RNA는 난치병 치료와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DNA는 코딩된 정보를 보호하거나 스스로를 복제하는데 시간을 사용한다면 RNA는 동적인 DNA와 달리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단백질 등 여러 물질을 생산해 낸다. 휘발유가 없으면 자동차가 제 기능을 못하듯이 RNA가 없는 우리 몸은 상상할 수도 없다.

수행원 정도로 여겨졌던 RNA는 어떻게 난치병 치료와 코로나19 팬데믹의 해결사로 떠올랐을까. 유전자 편집은 문제가 있는 특정 DNA 염기서열을 잘라낼 수 있는 효소를 찾고, 그 지점까지 이 효소를 안내하는 물질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DNA를 잘라내버리는, 마치 공학과학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얘기가 이제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 됐다. 현재 3세대에 안착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RNA로 완성도를 더했다.

3세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시스템은 가이드(Guide) RNA가 주인공이다. 3세대 기술은 Guide RNA의 안내를 받은 Cas9(절단 효소)이 특정 DNA의 부분을 잘라내는 현상을 활용했다. Guide RNA의 염기서열만 수정하면, 잘라내 버리고 싶은 특정 유전자 도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발상은 실제 생쥐의 색깔을 바꾸는 실험으로, Guide RNA를 활용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하다는 게 증명됐다. 이후 인간 유전자 치료법에도 도입돼 겸상적혈구 빈혈증 등을 치료하기도 했다.

 

/그래픽=김은실 다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다자이너

 

RNA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주목을 받는다. 코로나19 백신에서는 특정 단백질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mRNA가 백신 개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RNA에서 인간세포에 들러붙는 스파이크단백질을 만드는 염기 서열로 활용해 mRNA 백신을 만들었다.

RNA를 활용한 생명공학 기술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 유전자 편집이 가능할까’라는 물음과 싸워야 한다. 실제 중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로 DNA가 편집된 아기가 태어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mRNA 활용한 코로나19 백신 역시 접종 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지난 3월 국내 방역당국은 mRNA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심근염에 대한 인과관계를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크리스퍼 Cas9을 발견한 성과로 샤르팡티에와 함께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는 향후 5~10년 내 크리스퍼를 활용한 공인된 치료법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는 이보다 앞서 2019년 7월 크리스퍼의 체내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유전자 편집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생명공학은 RNA를 발판삼아 인간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용어설명

DNA(Deoxyribonucleic acid) : DNA는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보관하고 보존하는데 사용된다. 1869년 프리드리히 미셔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2개의 뉴클레오타이드 가닥이 결합해 이중나선 구조를 이룬다. 이중나선 구조는 복제를 위한 생화학적 단서를 제공한다.

RNA(Ribonucleic acid) : 핵산의 일종으로 DNA의 유전정보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RNA 분자들은 유전자의 조절, 세포 시그널의 인식 등 다양한 생명현상에 작용한다. RNA 자체가 효소로서 작용할 때도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