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하한선 35%보다 높게 설정 논란···정부안 공개 후 검토 시간 5일
“이대론 교용감소·경기침체 불보듯”···“관련 산업 중 석유화학 특히 심각”

22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최근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40%로 설정한 것과 관련해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관련 업계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탄소중립위원회에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과 2030년 NDC 상향안을 의결하고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기존 26.3%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이 안은 이달 말 국무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경영계는 우리나라 산업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급격한 탄소 중립 정책은 경영 부담을 크게 높인단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추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업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열린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에서도 최근 정부가 발표한 NDC 상향안이 산업계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지난 8일 NDC 상향 정부안이 공개된 이후 공휴일을 제외하고 실제 검토가 이뤄진 시간은 5일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NDC 목표를 35% 이상으로 설정했는데 이번에 하한선보다 높은 40%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동근 경총 상근 부회장은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는 5개월이란 짧은 기간 안에 조급하게 마련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경제 사회적 영향을 제대로 분석했는지 의문”이라며 “2030년까지 8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유럽, 미국, 일본에 비해 뒤쳐진 우리나라 탄소중립 기술수준으로는 급격히 상향된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 중립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환비용은 산업계가 상당부분 부담하게 될 것이나, 현재까지 소요 비용에 대한 추계와 구체적 기업지원 방안은 전혀 공개되지 않아 정책 불명확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매우 크다”며 “지금과 같이 감내하기 어려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결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감산, 해외 이전으로 인한 연계 산업 위축, 고용 감소 등 국가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가 이제라도 산업계 목소리를 적극 받아들여 감축목표와 시나리오를 재설정해야 한단 주장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우리나라 산업은 성장률 저하, 공급망 재편, 산업내 양극화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이중에서도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경쟁력 유지가 가장 큰 과제”라며 “우리나라 제조업은 주요국에 비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여건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1990~2000년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이었던 주요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최근 감소하기 시작해 단기간 산업전환을 준비하는데 부담이 더 크다”며 “부작용 없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기술과 산업구조 혁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탄소중립 기술 투자 인센티브 확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소통·협력 강화가 중요하다”며 “탄소중립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는 핵심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탄소중립 기술개발 세액공제 확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투자시 입지나 설비, 무역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특히 산업계와 소통과 협의가 중요하며, 중복 규제 보완 등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융합과학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보면 다른 경쟁국가에 비해 2050년까지 획기적으로 빠른 탄소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며 “배출정점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감축률은 4.17%로 EU(1.38%)나 영국(2.91%), 미국(3.07%), 캐나다(2.38%) 등 주변국에 비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NDC는 국내법상 이행 의무를 질 뿐만 아니라 국제법상 이행 의무도 부과되며 후퇴금지 원칙이 적용돼 미래에 대한 비전인 2050 탄소중립과 달리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또 “일자리가 줄어드는 탄소중립은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한다”며 “중요 정책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정부가 일자리 보존 및 안정적인 전력공급 방안 마련, 탄소중립 소요 비용을 산정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중요 정책 결정은 사회적 논의가 필수이며 국민 설득 없이 강행했을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단 설명이다. 

유 교수는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 올해 겨울 텍사스 정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 시사점은 충분한 예비전력 확보”라며 “석탄, LNG, 원자력 발전까지 모두 퇴출 시키는 것은 전력 공급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결국 에너지 전환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고 언급,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도록 기존 발전원의 예비력 활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수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표적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철강 산업은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진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예정이나 2030년까지 추가적으로 감축할 여력이 극히 낮다”며 “강화된 NDC가 배출권 할당으로 직접 연결되면 산업경쟁력이 극도로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 중에선 석유화학이 특히 심각하다”며 “2030년 NDC는 탄소 중립이 전제하는 미래기술 상용화가 고려되지 않아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 등을 고려해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경제적 파급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단 주장이다.

철강, 자동차 석유 업계도 추가 감축 여력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남정임 한구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은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기술을 통해 95% 감축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했지만 당장 2030년까지는 추가 감축 여력이 부족하다”며 “이번 NDC 상향안에 대해 철강업계는 현존기술 이외에 2040년 감축수단에 포함된 혁신기술까지 모두 반영된 만큼 감축 기술 개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스크랩의 안정적 확보방안을 마련하고 세제혜택과 에너지 인프라 지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단 지적이다.  

전력비용 상승과 불안정한 공급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도 나왔다. 김진효 THE ITC 팀장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라 전력비용이 오르고 공급 불안정 우려가 큰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할당대상 기업의 부담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친환경모빌리티실장은 “2030년 NDC 상향에 따라 급격한 전기·수소차 전환으로 내연기관 부품을 제조하는 대다수의 영세업체의 경우 개별기업의 역량만으로는 미래차 사업전환에 한계가 있다”며 “전기차 특성상 내연기관 대비 작업공수와 부품수 감소로 인해 고용축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래차 전환투자를 위한 금융, R&D 등 정부 지원확대와 친환경차 시대를 대비한 노동시장 전환을 위해 직업교육·훈련 등 확대가 필요하단 설명이다. 

정유업계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으로 인한 총 피해비용이 약 800조원에 이를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준상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과도한 감축목표는 자칫 국내 전체산업 축소 및 공장가동중단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정유산업 전환 여력 상실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바이오납사 사용 의무화 대신 인센티브 제도 도입, 석유 수급, 안보 계획 수립, 세제와 금융 지원 등 다양한 정부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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